공연문화가 발전했다는 것은 기술적인 측면도 포함한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공연을 즐길 줄 아는 관객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GDP가 높다고 해서 저절로 관객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GDP 순위를 뒤집는 문화발전 수준을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무대란 단순히 투입되는 자금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애정과 노력, 땀과 열정도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배우는 수많은 스텝들이 차린 만찬에 참여한다. 무대를 위해 제작자, 무대, 조명, 음향, 의상, 소품 등 여러 분야의 스텝들이 정성과 시간을 들인다. 배우는 그 준비된 무대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스텝의 수고는 가려지기 마련이다. 박수를 받을 때 늘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드는 이유다.
그렇다고 배우가 날로 먹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면 된다고? 아니다. 피나는 노력이 없이는 무대에 설 수 없다. 설렁설렁 하다가는 관객의 날카로운 비평에 직면한다.
관객은 연기나 공연예술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드러나지 않는 배우의 시간을 읽을 수 있다. 이를테면, 배우가 무대에서 진짜로 연기하는지, 척 하는지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사람에게는 진심을 느끼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관객의 진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훈련하고 또 훈련한다. 가을에 땅속에 들어가 겨울을 견디고 이듬해 봄에서야 싹을 틔우는 몇몇 작물들처럼, 화려한 무대에 서기 전 가장 어두운 터널 같은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래야 무대에서 진심이 꽃핀다.
2016년에 딤프(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브래드 리틀과 ‘오페라의 유령’을 불렀다. 10분이 채 안 되는 무대였지만 워낙 어려운 곡이어서 부담이 컸다. 그 10분 동안 최상의 컨디션으로 감동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악몽을 꾸기도 했다.
그 10분을 위해 두 달 이상 공연 시간대에 맞춰 연습을 했다. 일곱 시쯤에 무대에 오른다고 해서 저녁 일곱 시마다 연습을 시작했다. 공연 전 며칠 잦은 비행으로 피곤해진 성대를 보호하려고 외출도 하지 않았다. 남들이 보면 별나다고 할 수 있지만 관객 앞에 서는 배우들은 어쩔 수 없다. 그런 팽팽한 긴장이 없으면 객석은 무대에 호응하지 않는다. 당기다 만 화살처럼 그저 발치에 툭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심장을 꿰뚫는 감동을 선사하려면 여간 공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공연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주어진 시간 안에 배우가 만드는 극의 세계에 관객이 푹 빠져들도록 하는 것이다. 배우들이 느끼는 감정을 관객도 같이 느끼고 공감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배우들의 소망이자 목표다.
올해도 어김없이 딤프가 열린다. 세계 여러 곳에서 스텝과 배우들이 대구를 찾을 것이다. 누구 할 것 없이 단 10분의 공연을 위해 몇 달을 연습할 것이다. 딤프의 위상이나 지금껏 배우들이 보인 진정성을 생각하면 그들 모두 무대에서의 시간을 인생처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런 진심어린 무대를 보게 될 것이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예술인들은 더 좋은 무대를 만들어 관객을 감동시키고, 관객은 더 자주 공연장을 찾고,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더 좋은 무대가 만들어지는 선순환이 계속되기를 소망한다.
홍본영 뮤지컬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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