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로 “친밀한 토론” 나눈 뒤
외교부처 상의 없이 백악관 초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초청함에 따라 권위주의적 정상(독재자)들을 대화 파트너로 선호하는 트럼프 특유의 외교 스타일이 재조명 받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미국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두테르테 대통령과 통화해 “친밀한 토론”을 나누고 그를 백악관으로 공식 초청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일정은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정상들과 만나기 위해 11월 필리핀을 방문할 예정이다. 북한 문제에서는 협력관계로 돌아섰지만 남중국해 문제에서는 중국과 여전히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에 앞서 전략동맹 중 하나인 필리핀에 우호적 입장을 전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와 차례로 통화하며 이들을 백악관에 초청했다.
문제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구실로 시민 수천 명을 초법적으로 살해하는 것을 용인하는 등 인권침해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존 시프턴 아시아 대표는 “두테르테의 마약 살인전쟁을 인정함으로써 트럼프는 향후 발생할 살인에 도덕적으로 책임을 지게 된 셈”이라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심지어 미국의 외교를 이끄는 핵심부처인 국가안보위원회(NSC)나 국무부조차 트럼프의 두테르테 초청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 했으며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논란이 일자 백악관은 즉각 변명에 나섰다. 라인즈 프리버스 비서실장은 이날 ABC방송 ‘디스 위크’에 출연해 “인권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아시아 동맹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밝혔다. 하지만 올 2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사망 사건으로 북한과 정면충돌한 말레이시아 등을 두고 필리핀과의 협력을 구태여 강조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트럼프의 ‘독재자 사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관계는 시리아 문제로 양국이 급속히 냉각되기 전까지 ‘브로맨스(bromanceㆍ남자들간의 친밀함)’로 묘사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의 관계도 친근함 이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터키 개헌안 국민투표가 통과되자 하루 만에 서둘러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백악관을 지난달 3일 방문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미국은 엘시시 정부의 리더십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는 환영 인사를 받았다. 전 세계 권위주의 국가들 입장에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보호를 설파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는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더 접근하기 용이하다는 평가가 있다.
한편 두테르테 대통령은 바쁜 외교 일정을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에 응할지 장담할 수 없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전문매체 더힐 등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1일 "지금은 어떠한 확약도 할 수 없다. 러시아도 가야 하고 이스라엘도 가야 한다"고 현지 매체에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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