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호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인터뷰
“정부와 기업이 나서지 않는다면 정규직이 직접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기아자동차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의 ‘불편한 동거’가 종료된 지난 28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한석호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은 “정규직이 자신의 임금 상승분을 비정규직에 양보하는 등의 노력 없이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요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규직 조합원이 75%로 절대 다수인 민주노총 내부에서 노조 간부인 그가 정규직의 이기심을 버릴 것을 강조하며 조직 내부를 향해 쓴 소리를 쏟아낸 것이다. 아직 민주노총 내부에서 ‘소수의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만의 노조’에 대한 커지는 불신은 그의 주장에 점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은 기아차노조가 10년간 ‘동거’하던 비정규직의 우산을 빼앗은 것에 대해 “참담하다”고 했다. 그는 “전체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힘을 써야 할 때 비정규직의 손을 놓아버린 것은 충격적”이라며 “현대차노조가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한 사회공헌위원회를 추진하거나,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비롯한 비정규직의 권익 신장을 위한 노동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경제상황이 악화하면서 정규직이 제 밥그릇까지 빼앗길 처지에 내몰리자 이기적인 모습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노동자 중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말자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와 심지어 관리자 등도 구조조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자신의 처지 개선에만 더욱 몰두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총파업이나 가두시위 등의 노동운동 방식이 더 이상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으로 꼽았다.
결국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규직 스스로 양보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서는 등 사회적 교섭력을 키워 나가면 정부와 기업도 움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의 제안은 정규직 임금상승분 일부로 공정사회기금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한 위원장은 “양대노총의 평균임금이 전체 노동자의 상위 20%에 달하는 만큼 이들은 나머지 80% 노동자에게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며 “매년 평균 임금 인상분 3~4% 정도의 절반 가량을 떼낸다면 5년 내 공정사회기금 수십 조원을 조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기금으로 영세 하청업자나 비정규직 청년,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 시 감당이 어려운 자영업자 등을 지원하자는 것”이라며 “정규직이 밑바닥에 있는 이들을 위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태도로 국민들에게 진실된 울림을 주면 정부와 기업 역시 안 움직일 수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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