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유럽연합(EU)을 떠나겠다는 영국의 예상치 못한 투표 결과와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기대하지 않았던 승리를 목격한 사람들은 아마 이런 것을 기대할지 모르겠다. 극우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전 대표가 프랑스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에 대비해 유럽 각국의 집행기관들이 상세한 비상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틀렸다.
‘르펜 대통령’이라는 생각은 정말 끔찍하다. 유럽의 미래에 큰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가능성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위협은 유럽이 왜 그가 이길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정확한 이유다. 아무리 확률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프랑스 대통령 르펜이 유럽의 계획에 심각한 손상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는 정반대로 자신을 자리매김 해왔다. EU 회원국 간 국경 개방을 규정한 솅겐조약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EU에 관해서 그는 영국의 뒤를 좇아 프랑스의 회원국 지위 조건을 재협상하고 그 후 동의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말하고 있다. 만약 EU가 르펜이 요구하는 개정을 거부한다면 그는 프랑스의 EU 탈퇴(프렉시트)를 추진할 것이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프렉시트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영국의 많은 유럽 회의론자들은 영국이 세계와 거래하는 것을 꿈꾸는 데 반해 르펜은 보호주의 정책을 도입하려 한다. 드골주의자를 표방하는 르펜은 개방 대신 러시아, 미국과의 “대국” 관계를 보다 긴밀히 하기를 원한다. 그가 “전통적인” 기독교 가치를 수호하고, 다극적 세계질서라는 맥락에서 테러에 맞서 싸우는 것에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르펜은 프랑스의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3%까지 증액하겠다고 약속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목표치는 2%다. 반면 아프리카의 안정화 임무를 지원하는 데는 한 푼도 쓰지 않겠다고 분명히 했다. 이런 점에서 르펜의 승리는 유럽 주류와의 균열을 야기할 뿐 아니라 과거 수 십년 동안 지속된 프랑스의 전략적 지향점에도 파열음을 몰고 올 것이다.
결선투표 여론조사를 보면 무소속의 중도파 후보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여전히 앞서고 있다. 그러나 마크롱의 지지자들이 르펜의 지지자들에 비해 투표장까지 나올 정도로 열성적이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우려하고 있다.
최근 르펜의 대중적 지지도는 꾸준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프랑스 정치권이 스캔들과 불신으로 뒤흔들릴 때조차도 르펜은 1차 투표 여론조사에서 안정적인 우세를 유지했다. 이 엄청난 정치적 격변은 프랑스의 양당체제를 4당 구도로 파편화시켰고, 유력 후보들을 출마조차 못하게 무장해제시켰다. 하지만 르펜은 거의 상처를 입지 않았다.
르펜의 부상은 외부적 정치환경만큼이나 그가 주도한 FN의 재탄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는 자신의 동지인 플로리앙 필리포 FN 부대표가 입안한 그랜드 전략으로 극우집단의 이미지를 희석시켜왔다. 그 전략이란 FN을 거부해온 핵심 그룹, 이를테면 공무원이나 여성, 가톨릭 교계로까지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거다.
필리포 부대표는 FN이 “좌도 우도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르펜이 주도하는 정부의 기초를 닦는 데도 열성적이다. 새로운 정치적 엘리트의 구축도 시도 중이다. FN 정부에서 일할 인재를 구하고, 당의 의제에 대한 프랑스 ‘딥 스테이트(막후세력 혹은 숨은 권력)’의 거부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필리포는 국민투표를 포함해 의회의 승인을 얻지 않고 대통령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검토하고 있다.
르펜과 그의 팀에 비교하면, 유럽의 지도자들은 대비가 거의 안돼 있다. 물론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그들이 공개적으로 계획을 공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지금 단계에서 특정 성명은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 그렇다고 EU 지도자들이 르펜의 승리가 EU의 종말을 부르고 EU를 그렇게 방치할 것이라고 단순히 경고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대신 EU 지도자들은 어느 정도까지 자신들이 르펜 대통령과 협조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는 승리한다면 의회 다수당 지위를 얻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이는 프랑스 국민이 상기하는 대로 적대적인 의회와 총리가 함께 하는 ‘동거정부’로 귀결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EU 지도자들이 이런 형태의 프랑스 정부와 비공식적인 연대를 구축할 수 있을까.
유럽의 지도자들은 프랑스의 EU 회원국 지위 조건을 재협상하겠다는 르펜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또 프랑스의 EU 탈퇴 방침을 어느 정도까지 거부해야 할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EU 집행위원회는 유로존과 솅겐조약에서 프랑스의 탈퇴에 대한 독자계획을 수립해야 할까.
르펜이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같은 사람과 연대해 EU를 내부에서부터 해체하려고 시도하지 못하도록 EU 지도자들이 프랑스의 EU 철수를 오히려 촉진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EU의 관점에서 ‘유럽통합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 모네의 나라인 프랑스에서의 적대적인 대통령은 브렉시트보다 훨씬 더 파괴적일 수 있다. 끔찍했던 2016년에서 얻은 한 가지 교훈이라면 여론조사는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EU 지도자들은 눈을 감고 이번에는 여론조사원들이 옳기만을 바랄 게 아니라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마크 레너드 유럽외교관계협의회 집행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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