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아이스하키가 사상 첫 월드챔피언십(톱 디비전) 승격의 쾌거를 이루고 금의환향했다.
백지선(50)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전날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막을 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HHF)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A(2부리그)에서 대표팀은 3승 1연장승 1패(승점 11)로 6개 팀 중 준우승을 차지하며 ‘꿈의 무대’로 여겨졌던 월드챔피언십에 입성했다. 우크라이나와 최종전에서 슛아웃(승부치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극적인 승리로 승격을 확정하자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장악했던 백 감독은 감격의 눈물을 훔쳤고, 아이스하키협회 수장 정몽원 회장은 선수단과 포옹을 나누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후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는 국내, 귀화선수 모두 한 덩어리가 된 채 목소리 높여 제창했다.
동계올림픽에서 아이스하키는 최고 인기를 자랑하지만 국내에서는 비인기 종목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저변은 ‘얼음 강국’들에 비하면 한 없이 초라하기만 하다. 성인 등록 선수는 133명, 프로 팀은 없고 실업 팀이 세 개뿐이다. 미래의 젖줄인 고교 팀은 6개에 불과하다. 한국과 함께 이번 대회 1위로 승격한 오스트리아는 등록 선수만 6,093명에 달한다. 프로 팀은 1부 8개, 2부 6개다. 20세 이하 주니어리그 팀도 7개나 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척박한 환경을 비춰볼 때 한국이 세계 최강 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무대에 올랐다는 것은 ‘기적’ 이 아니면 달리 부를 말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 중심에 ‘백지선 매직’이 있었다. 2014년 7월부터 지휘봉을 잡은 백 감독은 부임 후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그 해 4월 안방 고양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A에서 5전 전패로 강등 당한 대표팀을 이듬해 디비전 1 그룹 B 우승으로 다시 승격시켰고, 2016년 대회 때는 당시 그룹 A에서 역대 최고 승점(7)을 올렸다. 올해 대회에서는 ‘강등만 면해도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강적들이 즐비했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는 결과를 냈다. 말하자면 3부리그에서 2부리그로 올랐다가 다시 3부 추락 후 2부→ 1부리그(월드챔피언십)로 뛰어오른 셈이다. 세계 남자 아이스하키 사상 유례가 없는 쾌거다.
서울 태생으로 1세 때 부모를 따라 캐나다에 이민간 백 감독은 1990년대 초반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뛰며 동양인 최초로 스탠리컵(우승 트로피)을 두 차례나 들어올린 슈퍼스타 출신이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지시한 전략들이 경기에 적중하면서 백 감독을 향한 선수들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그가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대표팀의 자긍심이다. 과거 땀 냄새가 진동하고 정리 안 된 라커룸은 깔끔하게 정돈됐다. 또 대회 참가를 위해 이동할 때는 정장을 착용하도록 했다. 푸른 눈의 귀화 선수 국가대표 7명도 모두 ‘우리 선수’로 하나된 팀을 만들었다. 그리고 항상 선수들에게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이라는 문구로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앞을 내다볼 수 있도록 채찍질 했다.
전술적으로는 기술 훈련보다 체력을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뒀다. 선수들 전원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벌떼 하키’와 전방위 압박으로 상대를 괴롭히기 위해서다. 약체가 강적을 잡으려면 체력 그리고 수비라는 걸 알았다. 협회 관계자는 “축구 월드컵을 봐도 약 팀이 강 팀을 잡는 이변을 일으킬 때 난타전으로 승부가 난 적이 거의 없다”며 “2002 한ㆍ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4강 신화를 이룰 때도 탄탄한 수비가 뒷받침 됐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라고 설명했다. ‘백지선호’는 이번 대회에서 폴란드(4-2), 카자흐스탄(5-2) 헝가리(3-1) 우크라이나(2-1)를 꺾을 때 적은 실점으로 버텼기 때문에 역전승도 가능했다. 이런 점에서 백 감독을 ‘빙판 위의 히딩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귀국한 백 감독은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에 비유된다는 말에 “히딩크와 비교된다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난 그저 짐 팩(자신의 미국 명)일뿐”이라면서 “아이스하키 팀이 성장하려면 한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정몽원 회장님과 선수들, 그리고 코치진 모두의 노력이 결실을 봤다”고 몸을 낮췄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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