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의 4분 만에 만장일치로
“先 탈퇴 협의, 後 미래관계 논의”
조기 총선 마친 6월 초 협상 개시
EU 내부 조율선 입장 차 가능성
유럽연합(EU) 27개국(EU27) 정상들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에 대응하기 위한 협상 가이드라인을 수립했다. 새 무역협정 동시진행 불가 원칙을 세우고 영국 내 EU시민 권리 보장을 최우선사항으로 요구하는 등 ‘초강경’ 대응으로 나왔다. 사실상 영국에 대한 ‘징벌적’ 대응으로 EU를 흔들려는 외부 시도에 맞서 27개국이 결속력을 과시한 셈이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브렉시트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협상 가이드라인은 안건 상정 4분만에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3월 29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리스본조약 50조에 근거한 탈퇴 의사를 EU에 전달한 지 한 달 만에 공동전선을 완성한 것이다.
가이드라인을 뜯어보면 EU27이 영국을 상대로 비타협적인 태도로 나올 것이 명확하다. 메이 총리의 ‘탈퇴 협상-미래관계 협상 동시 진행’ 요구를 일축하고 ‘선(先) 탈퇴 협의, 후(後) 미래관계 협상’을 원칙으로 세웠다. 또 영국 내 거주하는 EU시민의 권리를 협상 대상으로 상정한 영국에 맞서 이들의 권리를 ‘즉각적이고 실질적’으로 보장하라는 요구를 ‘최우선 보장사항’으로 삼았다.
영국이 탈퇴 전 약속한 EU 재정기여금액 약 600억유로의 지불과 아일랜드-북아일랜드 국경 자유통행 보장도 요구사항에 포함됐다. EU는 탈퇴협상 기간과 그 이후에도 영국 내 집행이 약속된 EU 예산은 계속 투입될 것이기 때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아일랜드 문제에는 “북아일랜드가 아일랜드와 통합 투표를 진행할 경우 북아일랜드의 빠른 EU 재가입을 보장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엔다 케니 아일랜드 총리는 “이는 아일랜드 통일을 추진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비상시를 대비한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영국을 압박할 카드로는 충분하다는 평가다.
EU27이 합의한 것은 어디까지나 대원칙에 불과할 뿐, 조건을 구체화하고 실제 협상에 접어들면 개별 사안에서 내부의 입장 차가 가시화될 가능성도 있다. 영국 내 자국인 이민자가 많은 폴란드나 리투아니아가 영국 내 EU시민권 보장을 우선시한다면 스페인은 자국 내 거주하는 영국인의 권리 보장을 위해 다소 느슨한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무역협상도 자체 경제력이 강한 독일과 프랑스가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반면 영국과 교류가 빈번한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영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빨리 진행되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오늘 회의가 안건을 4분만에 통과시킬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회의일 것”이라며 영국과의 협상뿐 아니라 EU 내부 조율도 험난할 것임을 시사했다. EU는 이달 22일쯤 구체화된 협상 지침을 마련한 후 영국이 조기 총선을 마친 6월 초 바로 협상을 개시할 방침이다.
EU27의 강경한 태도에 영국도 진통을 각오했다. 데이비드 데이비스 영국 브렉시트장관은 EU 정상회의 결과를 두고 “이 협상이 매우 복잡한 협상이 될 것이며 몇몇 부분에서는 대결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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