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 붐을 타고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가 ‘읽는 맛’을 추구한다면, 10여년 전 많은 젊은 시인들의 시는 ‘보는 맛’을 추구했다. 연과 행마다 시제가 바뀌거나 화자가 여럿인 다중 시점이 출현하는 등 언어 실험이 한창이었다. 이들의 시는 ‘미래파’(문학평론가 권혁웅), 혹은 ‘뉴웨이브’(신형철)란 타이틀로 소개됐는데 ‘소통불가의 난해시’란 수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지금은 중견이 된 김경주 김언 김행숙 진은영 황병승 등이 바로 이 뉴웨이브의 기수들이다.
저들 중 읽기에 ‘난해함’을 기준으로 줄을 세울 때, 시인들이 “이구동성으로”(시인 김민정) 가장 첫 머리에 올리는 시인이 조연호다. 철학적, 관념적 색채가 짙은 그의 시는 비문, 경전을 연상시키는 문체를 빌려 유려하면서 고답적인 스타일을 빚어낸다. 생경한 한자 조어는 음악성을 만든다. 저 독특한 만연체 문장에 하늘(시집 ‘천문’), 땅(‘농경시’), 지하(‘암흑향’)의 풍경을 담은 시집을 잇달아 출간한 그의 별명은 “시단의 박상륭”(권혁웅)이다.
조연호 시인이 자신의 시론(詩論)과 시작(詩作)을 풀어 쓴 산문집 ‘악기’(惡記ㆍ난다)를 냈다.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제 시들에 대한 사후적인 설명서”라며 “시나 문학의 세계에는 선함도 악함도 없다. 선함을 입히려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의미로, 그들의 도덕 기준에 어긋났다는 의미로, ‘악(惡)’을 제목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산문집이지만 역시 읽기에 녹록하지는 않다. 파르니메데스, 사포, 종영의 ‘시품’(詩品), 하이데거, 아도르노까지 동서양 고전을 ‘시인답게’ 해석하며, 현상과 감정, 언어와 시, 독서와 문체에 관한 사유를 풀어놓는다. 거칠게 정리하면, 우선 시가 어떤 현실을 언어로 담으려 해도 언어의 특성상 완벽하게 담을 수 없는 한계에서 이미 출발한다는 것이다.
산문집을 “시 형식에 대한 시 형식적 답변”이라고 정리한 저자는 “옥타비오 파스의 ‘활과 리라’ 같은 질감의 글을 염두에 뒀다. ‘시론의 이성, 시의 감성의 조합’인데, 제가 시를 쓰면서 도달하려는 지점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시가 정서에 매달린 물방울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성에 매달린 땀방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장르에서 시적 감흥을 받을 때, 영역이 서로 교차할 때, 시 한편의 무게와 다름 없습니다.”
책 곳곳에 ‘문체 선생’, 철학자 니체에 대한 오마주가 가득하다. “문체에 관한 한 오로지 니체에게서 배웠고 오로지 니체만을 존경한다”는 그는 아예 “니체 선생께 드리는 편지(‘음악의 남쪽, 인간의 북쪽’)”를 한 챕터로 따로 썼다. 자신의 시작(詩作) 방식도 소개한다. 책 ‘악기-문체’ 편에 담은 비법을 요약하면 “언어든 의미든 형식이든 연쇄적인 걸 즐기기 때문에, 엄청나게 수정한다”는 것.
‘한국 전위시의 최전선’으로 불리는 그는 자신의 글이 난해하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지만 평소 “불확정적인 세계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그는 “쓰는 자 외에 아무도 원치 않는 시를 쓰는 이유”를 자문하며 이렇게 말했다. “시 쓰기라는 행위는 하나의 세계이고 그 세계 안에서 저 자신은 자유로우니까요. 쓰고 있을 때에만 그것은 세계입니다. 시라는 것은 찰나적 비극을 알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시 자체가 숭고하고 위대하여 길이 남을만한 물질적 대상이라는 그릇된 믿음으로 가능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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