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방ㆍ흑색선전 등 유형 다양
드라마ㆍ가십 요소 갖춰 효과적
후보 대신 캠프가 저격수 역할 맡고
공감 가는 내용으로 끈질긴 공격
#2
의혹 대처엔 무시 전략도 한 방법
사실 규명 땐 신뢰 회복 쉽지 않아
학계 “네거티브도 후보 검증 도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꼭 내가 잘나야 하는 건 아니다. 남이 못나서, 남이 못하는 것보다 내가 덜 못해서 표를 얻는 길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선거 때마다 “정책경쟁을 하라” “네거티브를 관두라”는 호소가 늘 외면당하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오로지 네거티브에만 의존하는 것이 필승의 전략일까. 네거티브 캠페인, 그 참을 수 없는 유혹의 속성을 돌아봤다.
왜 하냐고 묻거든 ‘효과적이라’
네거티브 캠페인은 대개 불온한 것으로 간주된다. 지역주의와 색깔론에 기댄 근거 없는 비방과 흑색선전, 출처를 알 수 없는 사설정보지와 가짜뉴스의 유포,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제기 등 ‘네거티브의 나쁜 예’를 지겹도록 봐 온 탓이다. 하지만 네거티브 캠페인의 사전적 의미는 ‘비리, 잘못을 지적해 상대 후보가 지지를 받지 못하도록 하려는 선거 운동’이다. 즉 넓게는 ‘나를 지지해야 할 이유’(적격론) 대신 ‘상대를 뽑지 말아야 할 이유’(불가론)를 호소하는 모든 행위가 포함된다. 좁게는 정책이나 공약이 아니라 상대 후보의 과오 및 실수나 부족한 인성, 자격, 태도에만 집중해 펼치는 선거 운동을 말한다.
사실과 증거, 근거에 기반해 유권자들에게 위험 요소를 경고하는 ‘알 권리 보장형’부터 근거 없이 의혹만 지피는 흑색선전, 마타도어, 허위사실 유포 등 불법적 네거티브까지 그 유형은 다양하다. 70%의 사실에 30%의 근거 없는 의혹을 버무린 복합형이 유권자를 가장 헷갈리게 만드는 유형일 수 있다.
캠프와 후보가 네거티브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미 캠페인 컨설턴트이자 정치평론가인 커윈 스윈트는 저서 ‘네거티브, 그 치명적 유혹’(플래닛미디어)에서 “유권자들은 정치판의 추악한 중상모략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론 네거티브 캠페인에 효과적으로 반응한다”며 “여기엔 드라마와 가십이라는 두 요소가 모두 있다”고 지적한다.
이론적으로 부정적 정보는 보다 눈에 띄며, 기억에 각인되기 쉽다. 이른바 부정성 효과 이론(negative effect theory)이다. 또 유권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를 지지할 때보다, 싫어하는 후보에 반대할 때 더 큰 결집력을 드러낸다. 자신의 장점을 알리기는 너무 어렵지만, 상대의 단점을 부각시키기는 쉽다는 ‘가성비 높은’ 선거운동은 경험칙상 흔히 선거 승리로 이어졌다. 정책선거를 하자는 호소가 대체로 공염불로 돌아가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공격은 후보 대신 저격수가
후보와 캠프는 어쩔 수 없이 네거티브 캠페인의 기본 공식을 익혀야 한다. 상대의 문제점을 알리거나 쏟아지는 의혹 제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곧 낙선으로 가기 때문이다. 배철호 메르겐 대표컨설턴트는 분석서 ‘네거티브 아나토미’(글항아리)에서 “공격에도 룰이 있다”며 “유권자들의 정서나 감수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들이대면 선거과열 주범이라는 비난만 받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가 분석한 효과적 공격의 5대 요소(SPEAR)는 저격수(sniper)가 고정된 틀을 탈피해서(patternless) 쉽고 공감되는 내용(easy & emotion)으로 정타(aiming)를 지향하며, 이어간다(rally)는 것이다. 우선 후보는 미래를 이야기하고 네거티브는 대변인이나 캠프 인사 등 별도의 저격수(sniper)가 맡아야 네거티브를 남발하는 후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피할 수 있다. 또 유권자에게 쉽게 와 닿지 않는 복잡한 내용의 네거티브의 효과는 반감된다. ‘갑철수’ ‘적폐 연대’와 같은 이름을 짓는 것도 유권자들의 머리에 쉽게 기억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같은 사안도 쪼개서 반박에 재반박을 이어가는 것도 유권자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준다.
네거티브 공격이 특히 치명적인 경우는 공개된 내용이 유권자의 배신감을 건드릴 때다. 배 대표는 “유권자들은 자신이 특정 정치인에게 갖는 기대, 욕구를 토대로 후보의 진정성에 대한 일정한 믿음을 갖고 있는데, 네거티브의 목적은 결국 이 진정성에 흠집을 내는 것”이라며 “이 경우 유권자와 후보의 연대감에 상처가 생기고 나아가 지지철회로도 이어진다”고 분석한다. 적폐 청산을 외치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아들이 ‘고용정보원에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나, 새정치를 강조하는 안철수 후보가 ‘갑질을 했다’는 의혹 제기가 바로 이런 배신감을 자극하는 네거티브다.
무시, 효과적이나 위험도 커
네거티브 캠페인을 제기하는 것보다 더 난해한 게 의혹에 대한 대처다. 성실하게 해명하려 들다가 자칫 상대의 프레임에 휘말릴 수도 있고, 그렇다고 무시로 일관했다간 오만한 대처 자세가 또 다른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네거티브 아나토미’가 꼽는 방어의 5가지 전략(AEGIS)은 깨끗한 사과(apology), 근거의 제시(evidence), 진흙탕 전략(gloomy), 무시하기(ignore), 꼬리 자르기(sacrifice)이다. ▦해명할 것이 있다면 떠밀리기 전에 사과하며 개선방안을 언급하거나 ▦반박의 근거를 대고 상대의 의도를 지적하는 방법이 우선 언급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더 자주 사용되는 것은 나머지 세 전략이다. ▦더 큰 대의명분이 있다며 말을 돌려 상대의 공격 자체만을 비난하는 진흙탕 전략이나 ▦어설픈 답변을 피하기 위해 무시로 일관한다거나 ▦내가 직접 한 것은 아니지 않냐며 다른 희생양에게 책임을 돌리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뭉개기 전략은 핵심 지지층 결집에 주로 효과적이고,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엔 신뢰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무시전략이 늘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많은 분석이 이뤄진 선거로 꼽히는 1988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부시 후보 측이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에 대해 했던 마타도어가 대표적 예다. 연방 상원의원 스티브 심스는 댄 퀘일 부통령 후보의 월남전 징병기피 논란을 피하기 위해 별안간 “듀카키스 후보의 부인 키티가 1970년 성조기를 불태우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여긴 듀카키스는 유권자들이 자신을 부당한 정치공세의 희생양으로 봐줄 것이라 믿었지만, 무대응의 결과는 부시의 승리였다.
네거티브 발 붙이기 좋은 한국선거
정상적 네거티브 캠페인은 후보검증에 결국 도움이 된다는 게 학계의 평가다. 다만 선거를 과열시키거나 혼탁하게 할 경우 정치혐오를 유발해 투표율을 떨어뜨린다는 해석도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네거티브 캠페인이 비판과 부정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중요한 정치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역대 투표율이 최하였던 2007년 대선은 BBK 의혹으로 시작해 BBK 의혹으로 끝난 선거였지만 네거티브가 투표 참여 의사 자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체로 각 후보간 변별성이나, 정책, 공약의 차별성이 크지 않은데다, 집권당에 대한 응징의 수단으로 한 표를 행사해 온 경험이 많아 유독 네거티브 공방이 힘을 얻는다는 분석도 있다. 배 대표는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 개혁이 순조롭게 이뤄진 경험이 있다면 네거티브 정보가 발을 붙이기 어려웠겠지만, 그간 여러 정권의 실정(失政)으로 대선후보에 대한 부정적 정보가 결국 옳은 것으로 드러난 적이 많아 한국 유권자들은 이런 위험신호에 더 강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법리와 사실관계를 다툴 시간이 부족한 국면일수록 언론은 방화범 역할만 할 게 아니라 소방수로서 팩트체크 기능을 활발히 해줘야 한다”며 “유권자들은 네거티브의 속성을 이해하고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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