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명 입장에 4000명 신청
“번역은 내게 취미 같은 것”
“소설을 쓸 때는 내키는 대로 제멋대로 쓰지만 번역할 때는 자아를 죽이고 겸허해지려는 마음이 있다. 상반된 두 가지를 번갈아 함으로써 정신적 혈액순환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
일본의 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ㆍ68)가 27일 번역활동을 주제로 이례적인 강연을 해 주목을 끌었다. 매년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자인 그는 영미문학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아사히(朝日)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하루키는 도쿄(東京)에서 열린 번역을 주제로 한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번역 (거의) 모든 작업’ 출간 기념행사에서 “번역을 통해 소설을 배웠다”고 밝혔다. 35년 경력의 ‘번역가’로서 첫 강연이었다.
하루키는 이 자리에서 “나에게 번역은 틈이 나면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취미와 같은 것”이라며 “처음 원서를 읽을 때는 세세한 부분까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읽지만 그게 쌓이면 자연스럽게 (번역) 기술이 몸에 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번역작업은 소설 집필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번역은 궁극의 숙독(熟讀)이고 한 줄 한 줄 텍스트를 좇는 것은 작가로서 귀중한 경험”이라며 “번역을 통해 트루먼 커포티, 존 어빙, 레이먼드 카버같은 미국 소설가로부터 소설작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에게 번역은 소설 창작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는 “소설가로서 안 좋은 점은 쓰기 싫은데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쓸 내용이 없어 괴롭고 배가 아파오기도 한다”면서 “그래도 나는 소설을 쓰고 싶지 않은 시기에는 번역을 하기 때문에 소설을 쓰면서 신음한 기억이 없고 배도 안 아프다”고 말했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등단한 하루키는 81년 미국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마이 로스트시티’를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번역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날 행사에는 약 400명이 입장했으며 입장티켓 경쟁률은 10대1이 넘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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