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박권일의 글쟁이 페달] 자전거 타는 당신, 어떤 타입인가요?

입력
2017.04.28 16:00
0 0
월드 챔피언 시절의 피터 사간
월드 챔피언 시절의 피터 사간

사이클리스트는 흔히 클라이머(climber), 스프린터(sprinter), 올라운더(all-rounder) 등의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클라이머는 언덕에서 잘타는 사람, 스프린터는 평지에서 빠른 사람, 올라운더는 양쪽 모두 균형 있게 잘 타는 사람이다. 참고로 나는 올라운더다. 언덕에서도 못타고 평지에서도 못타서 올라운더. ‘평균이하 리그’에선 올라운더가 그런 의미다. 평지에서 못타면 클라이머고, 작은 언덕만 만나도 줄줄 흘러내리는 사람은 스프린터다. 이 리그에선 잘하는 걸 기준으로 유형이 나뉘는 게 아니다. 못하는 것이 뭐냐에 따라서 나뉜다.

사이클을 타다보면, 자신이 어떤 지형에서 타는 걸 좋아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나는 언덕도 좋아하고 평지도 좋아한다. 잘 타는 이가 본다면 어떻게 저렇게나 못 탈까 싶겠지만, 내가 언덕도 좋아하고 평지도 좋아한다는 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컨대 사실이다. 다 좋아한다. 그저 눈물이 날 정도로 느릴 뿐이다. 주말마다 같이 타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은 심지어 나보다도 느리다. 우리 팀이 대한민국 전체 동호인 중에서도 최하위 그룹인 건 거의 확실하다. 재미있는 건 이런 낮은 레벨에서도 각각 유형이 다르단 점이다. 마른 체형은 대개 클라이머 스타일이고, 살집이 좀 있으면 스프린터 혹은 올라운더다.

그렉 반 아버맛이 2017년 파리-루베 대회 우승석에 키스하고 있다
그렉 반 아버맛이 2017년 파리-루베 대회 우승석에 키스하고 있다

수준 높은 동호인들, 그리고 프로 선수들의 경우 단순히 저 세 가지 유형으로만 분류되지 않는다. 클라이머나 올라운더 중에서도 짧고 가파른 언덕, 변화무쌍한 코스에서 빠른 유형이 있는데 이들을 특징해 ‘펀쳐(Puncheur)’라고 부른다. 현재 사이클계 최고의 스타 피터 사간이나 리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올해 파리-루베 우승자인 그렉 반 아버맛,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무적의 질베’ 필립 질베 등이 이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지구력이 아주 탁월하지는 않아서 투르 드 프랑스 같은 그랜드투어의 우승을 노리긴 쉽지 않지만, 글자 그대로 ‘한방’이 있다. 이들은 가파른 언덕에서 순식간에 치고 올라갈 힘을 가졌을 뿐 아니라 평지 스프린트에도 강하기 때문에 특히 하루 주행에서 대활약한다. 이른바 정통 클라이머들은 뼈가 앙상한 체형이 대부분이고, 정통 스프린터들은 우락부락한 근육질인 경우가 많다. 반면 펀쳐들은 깡마르지도, 아주 근육질도 아닌 ‘적절히 근육이 붙은’ 체형이 주류다.

알베르토 콘타도르의 타임트라이얼 장면
알베르토 콘타도르의 타임트라이얼 장면

‘타임트라이얼 스페셜리스트’도 있다. 타임트라이얼(time trial, TT)은 경쟁하는 선수들과 같이 타는 게 아니라 혼자서 독주하거나 자기 팀하고만 달리는 경기로, 특정 구간을 얼마나 빠른 시간에 주파하는가를 겨룬다. 전용 자전거, 전용 수트, 전용 헬멧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 동호인들이 접하기가 아주 쉽지는 않은 편이다. 몇 주에 걸쳐 열리는 그랜드 투어 경기에서 종합우승을 하려면 언덕에서 강해야 하지만, 타임트라이얼에서 승부가 갈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TT 능력은 상당히 중요하다. 랜스 암스트롱의 시대를 끝내며 한 시대를 풍미한 스페인의 전설 알베르토 콘타도르는 전형적인 클라이머 타입이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한 엄청난 타임 트라이얼 능력으로도 유명했다.

'수퍼 도메스티크' 옌스 폭트의 선수 시절
'수퍼 도메스티크' 옌스 폭트의 선수 시절

좀 독특한 유형으로 ‘도메스티크(Domestique)’도 있다. 우리말로는 ‘도움선수’ 정도의 의미다. 물통 배달부터 바람막이, 페이스메이킹, 라이벌을 자극하는 어택에 이르기까지 팀 에이스를 도우며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게 바로 도메스티크다. 이건 사실 유형이나 타입이라기보다 경기에서의 역할(role)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지금 투르 드 프랑스를 제패하며 사이클의 황제로 군림하는 크리스 프룸 선수는 데뷔 후 몇 년 간 그랜드투어에서 도메스티크로 활약하며 실력을 검증 받고, 나중에 명실상부 에이스로 올라선 케이스. 하지만 ‘수퍼 도메스티크’라 불릴 정도로 이 유형에 특화한 선수들이 출현하면서 언젠가부터 도메스티크는 하나의 독자적인 사이클리스트 유형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 유형은 팀을 위한 희생정신이 누구보다 투철할 뿐 아니라 마치 내일이 없는 듯 모든 걸 불태우는 용기와 근성 때문에 팬과 동료 모두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 안드레아스 클뢰덴, 조지 힌캐피 같은 선수들이 대표적인 예다. 얼마 전 방한한 옌스 폭트 선수도 전성기에는 도메스티크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사이클리스트 유형은 혈액형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호는 바뀔 수 있지만, 타고난 성정과 체질은 변하기 어렵다. 다만 유형 간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같은 올라운더라도 그 수준은 천차만별일 따름이다. 최근에는 파워미터 같은 장비가 많이 보급되어 자신의 타입과 수준을 더 정확히 파악해낼 수 있게 됐다. 이런 것 모두가 자전거의 즐거움 아닐까.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