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깜짝 승리를 약 2주 앞두고 ‘미국 유권자들과 트럼프의 계약서’라는 2쪽 분량의 문서를 발표했다. 내용은 취임 후 100일간 실현시킬 구체적인 실행 계획. 발표 장소도 에이브러햄 링컨 제16대 미 대통령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명연설을 남겼던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스버그여서 이날 유세는 ‘게티스버그 연설’로 불리며 ‘트럼프의 100일’에 대한 기대와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취임 후 100일간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 내놓은 공약 셋 중 하나도 실현시키지 못한 채 원대했던 계약을 ‘용두사미’로 만들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가 수많은 공약을 연기, 우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당시 28가지 조치와 10개 입법안을 약속했는데, 이를 세부 문항으로 정리한 60개 항목 중 28%만 완료 또는 개시한 반면, 65%는 파기했거나 아예 언급 조차 없는 상태다.
주요 성과는 대부분 대통령 단독 권한인 행정명령으로 이행됐다. 지지부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발을 뺐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불허했던 키스톤XL 송유관 사업을 강행했다.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과 전방위적인 불공정 무역행위 조사 등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주요 공약이었던 테러 위험국 국민의 입국 금지, 이민자를 위한 ‘피난처 도시’ 지원 중단 등 반(反)이민 행정명령은 사법부의 중단 명령으로 인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태다. 충돌이 뻔한 의회를 우회해 공약을 관철하려던 트럼프의 전략이 대패한 셈이다. 헨리 브랜드 텍사스대 역사학 교수는 “트럼프는 현실 세계가 복잡한 이유들로 얽힌 결과물이라는 점을 배우고 있다”며 “역대 대통령들보다도 그는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 더욱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24일 시카고대학 연설에서 직접적인 비판은 삼가면서도 “자신과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과도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꼬집었다.
행정명령이 재차 수렁에 빠지고 ‘트럼프 케어’(의료보험 체계 개혁) 입법 실패 등 의회에서도 ‘판정패’를 거둘 때쯤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 무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2월 10일)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3월 1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4월 7일) 등 굵직한 정상회담이 줄지어 예정된 때기도 했다. 아베 총리와는 ‘골프 외교’로 친밀감을 강조, 공고한 안보동맹을 강조한 후 북 미사일 발사 등 중요 순간에 통화를 하며 친밀관계를 다지고 있으며, 중국과 대북 압박 공조 전선을 재구축해 일부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특히 시리아 화학무기 공격 이후 사흘만에 군사개입을 하는 등 단호한 개입에, 폴리티코ㆍ모닝컨설팅 여론조사(13~15일ㆍ1,992명)에서 유권자 49%는 정부가 테러리즘 대응 및 전쟁 부분에서 뛰어났다고 답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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