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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목숨걸고 노동하기

입력
2017.04.2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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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스물아홉 이진희씨. 2016년 아버지 건강이 악화되면서 파견업체를 통해 삼성전자·LG전자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BK테크에서 일을 시작했다. 밤 아홉 시부터 오전 아홉 시까지 밤샘근무를 하고 낮에는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며 열심히 살았다. 진희씨는 절삭공구가 스마트폰 몸체를 깎으면, 가공을 위해 사용한 메탄올을 에어건으로 날리는 작업을 했다. 일을 한지 4일째 진희씨는 쓰러졌다.

보름 뒤 깨어난 진희씨는 앞이 보이지 않았고, 몸을 가눌 수 없었다. 고농도 메탄올에 중독돼 시각장애 1급, 뇌경색 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하청업체는 에탄올에 비해 독성이 강하고 가격은 싼 메탄올을 이용했고, 보호장비도 환기시설도 없는 작업장에 진희씨를 밀어 넣었다. 그렇게 2015ㆍ16년 진희씨처럼 스마트폰 부품 공장에서 일하던 20ㆍ30대 청년 6명이 시력을 잃었다. 살아갈 날이 창창한 이들이 하루아침에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얼마나 세상이 원망스러울지,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 가늠하는 것조차 어렵다.

노동건강연대와 선대식 기자는 다음스토리 펀딩을 통해 시력을 잃은 청년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1,500만원을 모금해 장애적응과 재활훈련비를 마련할 예정이다. 청년들은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지만 정부는 어떠한 재활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않고 있다. 민사소송 대상인 하청업체 사장들은 재산이 없다며 발뺌한다. 파견업체와 회사는 검찰의 약식명령 청구로 100~400만원의 벌금을 낸 것이 다였다.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활동가는 “청년들의 눈을 멀게 한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고, 고용노동부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청년들이 노동현장에서 산화하고 있다. 2010년 2012년 용광로 쇳물에 사망한 20대 청년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끼여 사망한 청년, 편의점에서 흉기에 찔려 사망한 아르바이트 노동자, 최근 LG U플러스 고객센터에서 실적압박으로 자살한 현장실습 고등학생과 살인적인 일정과 비인격적 대우로 목숨을 끊은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까지. 이들은 하나같이 저임금 노동에 시달렸고, 비정규직이거나 파견업체 직원이었으며,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쓰러져갔다. 기업은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고, 정부는 무책임했다. 이 모든 일은 개인이 운이 없어서 겪게 되는 비극이 아니라 사회적인 살인이었다.

4월 28일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2,400여명의 노동자가 해마다 산재로 죽어나간다. OECD 산재사망 1위 국가라는 불명예도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지난 한해 현대중공업에서만 11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한 달에 한 명씩 일터에서 사람이 죽어나간 셈이다. 사용자 중심의 노동악법, 낮은 최저임금, 불법파견과 비정규직이 난무하는 노동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이 고통 받고 좌절하며, 생을 마감하고 있다. 일자리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법과 노동구조를 개선해 노동의 질을 높이는 것이 시급하다.

4년 전 오늘, 오바마 대통령은 “어느 누구도 집에 월급을 가져가기 위해 자신을 목숨을 걸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광화문 전광판 위에 여섯 명의 노동자들이 노동악법 개정을 요구하며 15일째 단식농성 중이다. 노조조직률이 채 10%도 되지 않는데 경제위기 원인을 오로지 ‘강성노조’, ‘귀족노조’ 탓으로 돌리며 노조와의 전쟁을 선포한 대선후보는 한국만 아니라 지구 어디에도 발붙여서는 안 된다. 제발 일하다가 죽고 다치는 노동자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보자. 남은 대선, 노동자의 인권과 생명권, 환경권을 어떻게 개선할지를 토론하자. “꿈속에서는 앞이 보인다”고,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는 이 젊은 노동자들에게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정치가 응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찬란한 5월의 대선, 모두에게 ‘빵’과 ‘장미’를!

이유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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