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4.28
섭식과 다이어트가 대중의 인식 속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서구의 경우 1960년대부터였다. 70년대에는 구토제 성분이 든 다이어트 약이 시판됐다. 한국전쟁 직후의 빈곤과 경제개발 총력전으로 50ㆍ60년대를 보낸 한국은 70년대 식량 안보 차원의 쌀 증산 및 혼분식 장려정책으로 다이어트를 아는 이조차 드물었고, 영양과 보건 차원의 권장 식단이라는 게 대중화한 것도 80년대 중반 이후였다.
권장식단의 원조 격인 ‘푸드 피라미드(일명 다이어트 피라미드)’를 처음 도입한 것은 1974년 스웨덴이었다. 스웨덴 국립 보건복지위원회가 매끼 영양군별 적정 음식물 섭취량을 밝힌 그 보고서의 원래 목적은 72년 농산물 파동으로 식재료값이 급등하자 시민들이 적정 영양소를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섭취할 수 있도록 하려는 거였다. 스웨덴의 푸드 피라미드는 큰 호응을 얻어 금세 인근 북유럽 국가로, 서독 등 유럽과 일본 등지로 확산됐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건 미국 농무부(USDA)가 스웨덴 버전을 참조해 1992년 4월 28일 발표한 푸드 피라미드다. 네 개 단(段)에 6개 군의 음식물을 영양소별로 나누어 각각 권장량을 기록한 거였는데, 가장 넓은 아랫단은 곡류와 빵 등 탄수화물이었고, 바로 윗단은 야채와 과일, 세 번째 단은 유제품과 육류(단백질), 맨 위가 지방과 오일, 당류였다. 식사의 약 60%를 탄수화물로 채우고, 지방 섭취를 최소화하도록 권장한 이 지침은 미국은 물론 거의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의 각급 학교 및 가정 급식 식단 구성의 바이블처럼 숭배됐다. USDA가 피라미드 작성 작업을 시작하던 88년 당시 스웨덴의 심장병 발병 비율이 미국보다 높았다는 사실은 무시됐다. USDA의 1차 개정판인 ‘마이 피라미드’가 나온 2005년 무렵 미국 성인(20~75세)의 약 65%가 비만이었다. 마이 피라미드는 개인별 연령과 활동량 등에 따라 12개 안으로 세분화됐고, 도정하지 않은 통곡류 등 권장 사항이 포함됐다. 92년 안이 만들어지던 과정에 식품산업계의 치열한 로비전이 있었다는 사실도 그 과정에서 알려졌다.
2011년 6월의 최근 버전 ‘My Plate’는 4분할된 둥근 접시 형태의 다이어그램으로 훨씬 단순화ㆍ추상화됐다. 채소와 과일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고, 나머지 절반은 통곡물과 양질의 단백질이다. 지방과 설탕 등 나머지는 접시 바깥 자리에 팁으로 기술됐고, 유제품도 작은 원으로 별도로 그려졌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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