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칙을 저버린 ‘국면전환용 카드’는 일시적 효과를 낼 수 있지만 반드시 뒤탈이 나기 마련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 3월 19일 서울-광주전에서 페널티킥 오심을 저지른 김 모 주심과 박 모 부심에 대해 이틀 후 심판 평가 회의를 열어 각각 무기한 배정정지, 퇴출 징계를 내리고 보도자료를 냈다. 오심이 광주 패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기영옥 광주 단장이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강하게 불만을 나타낸 점 등이 이례적인 중징계 발표에 영향을 미쳤다. 축구에서 판정은 최종적으로 주심 책임이다. PK 오심으로 부심이 주심보다 더 큰 징계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도 박 부심이 ‘퇴출’이라는 철퇴를 맞은 이유는 ‘거짓말’ 때문이다. PK를 불기 전 김 주심은 더 가까이 있던 박 부심에게 무선교신으로 “(손에) 맞았나?”라고 물었다. 이 교신은 주심과 두 명의 부심, 대기심, 현장에 있는 심판 평가관 5명이 동시에 듣는다. 박 부심은 본보 인터뷰에서 “핸드볼인지 아닌지 정확히 못 봐서 (주심 물음에) 아무 대답도 못했다”고 밝혔다. 반면 교신을 함께 들은 나머지 4명은 “박 부심이 ‘손에 맞았다’고 말해 주심의 PK 판정을 도왔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 주장이 엇갈리는데 교신내용은 녹음이 안 돼 증거가 없다.
프로연맹은 박 부심이 주심 판정을 돕는 코멘트를 하고도 오심으로 드러나자 발뺌하고 있다고 판단해 “심판의 신뢰 의무를 심각하게 위배했다”며 퇴출시켰다. 프로연맹은 “그 부심은 작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강경 조치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박 부심은 억울하다며 이의신청을 했다. 기각 당하자 변호사를 선임해 법정 대응까지 준비 중이다. 그는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갔다. 심판을 그만두더라도 명예회복은 하겠다”고 토로했다.
프로연맹 주장대로 박 부심의 능력과 자질이 부족하면 심판 평가 회의에서 낮은 점수를 매겨 경기 배정을 최소화하고 시즌 중간 강등시키면 된다. 하지만 프로연맹은 규정 어디에도 없는 ‘퇴출’ 조치를 내렸다. 심판 규정상 평가 회의에서는 배정정지만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보도 자료까지 배포해 한 명의 심판을 공개적으로 ‘양치기소년’으로 만들어버렸다. 프로연맹은 “너무 상황이 급박해서 퇴출이라는 ‘센’ 단어가 보도 자료에 들어갔다. 퇴출이 아니라 무기한 배정정지라는 의미로 이해해 달라”고 해명했다. 거센 비난 분위기를 서둘러 무마하기 위해 여론 재판했음을 시인한 셈이다.

또한 김 주심이 받은 ‘무기한 배정정지’도 형평성에 어긋난다. 승패에 영향을 미친 PK 오심을 저지른 주심은 보통 3~5경기 배정정지를 받는다. 지난 22일 수원-강원전에서 경기종료 직전 PK 오심이 나왔는데, 해당 주심은 배정 정지 없이 보수교육만 받으면 됐다. 프로연맹 관계자는 “강원 PK를 수원이 막는 바람에 승패가 안 바뀌었다. 주심이 운이 좋은 편”이라고 답했다. 심판 평가의 정확한 잣대가 도대체 뭔지 프로연맹에 묻고 싶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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