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훈장과 포장 수여가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주먹구구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보도(▶ 본보 4월26일자 관련기사)를 위해 취재에 착수한 건 한달 전 일이다. 기자는 한 정부기관의 제보를 받고 훈ㆍ포장 담당부처인 행정자치부 취재에 들어갔다. 국가와 사회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이들에게 수여되는 훈ㆍ포장 내역을 파악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행자부 상훈담당관(과장급)은 정부부처 별 훈ㆍ포장 수여 내역을 받아보고 싶다는 기자의 요청에 “생각은 해보겠으나 주기 어렵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그는 지속적인 요청이 이어지자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상급자인 의정관(실장급)도 언론 소통 창구라는 대변인(국장급)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개를 하지 못하는 이유도 딱히 없었다. “부처별 훈ㆍ포장 수여 내역을 공개하면 정부기관들끼리 얼굴을 붉힐 수 있는 사안이라 공개가 어렵다”는 정도였다.
결국 기자는 국회의원실을 통한 우회적인 방식으로 겨우 해당 자료를 받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못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조차 행자부는 ‘대외 비공개 요청’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국내에서 정보공개법(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게 21년 전인 1996년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관리하는 정보는 적극적으로 공개하자는 게 이 법의 취지다. 행자부는 매년 ‘정보공개 연차보고서’를 내며 정보공개율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는 걸 자찬해왔다.
하지만 기밀정보도 아닌 훈ㆍ포장 내역을, 그것도 일반 국민을 대리하는 언론에서 요청을 하는데도 뚜렷한 명분도 없이 거절을 일삼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투명한 국정 운영은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 보도가 됐듯 아직도 새마을운동 관계자들에게 해마다 60개가 넘는 훈ㆍ포장이 돌아가는 반면 복지나 환경, 인권 관련 훈ㆍ포장은 턱없이 적은 데에는 숨기고 싶은 불투명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거라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행자부는 ‘투명한 정부’를 표방하는 ‘정부3.0’의 주무부처로서 매년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실적 등을 직접 평가한다. 과연 행자부가 지자체나 공공기관들을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자문해보길 바란다.
이성택 정책사회부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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