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 머물던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의 돌풍이 태풍급으로 커지고 있다. 세계 아이스하키도 적잖게 놀란 모양새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 홈페이지는 “한국이 역사를 쓰고 있다”고 했고, 한국 대표팀과 맞붙은 적장들은 “매우 강한 팀”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백지선(50)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아이스하키가 파죽지세의 기세로 ‘꿈의 무대’ 월드챔피언십(1부리그) 승격을 눈앞에 뒀다. 대표팀은 26일(한국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A(2부리그) 3차전에서 헝가리에 3-1 역전승을 거뒀다.
이로써 3연승으로 승점 9를 쌓아 대회 중간 순위 선두를 지켰다. 대표팀은 남은 2경기에서 승점 2를 추가하면 최소 2위를 확보, 2018년 5월 덴마크에서 열리는 2018 IIHF 아이스하키 월드챔피언십 승격을 확정한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이변은 수문장 맷 달튼(31ㆍ안양 한라)의 손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구가 ‘투수 놀음’이라고 하면 아이스하키는 ‘골리 놀음’으로 비유할 만큼 팀 내 비중이 크다. 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대표팀이 이번 대회에서 마지막 3피리어드에 무서운 집중력과 뒷심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달튼이 철벽 방어벽을 구축한 덕분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대표팀은 실제 앞선 폴란드전과 카자흐스탄전 3피리어드에 각각 2골, 4골씩을 넣었고 이날도 2골을 터뜨려 역전극을 완성했다.
달튼은 이번 대회 3경기에서 경기평균실점(GAA) 1.67, 세이브성공률(SVP) 94.62%를 기록 중이다. 보통 93% 이상 SVP를 기록하면 ‘신의 영역’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달튼은 ‘철벽’처럼 골 문을 지키며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달튼이 합류하기 전이었던 2014년 디비전 1 그룹 A 대회 당시 한국은 안방 경기도 고양에서 힘 한번 쓰지 못한 채 5전 전패로 강등의 아픔을 맛 봤다. 그 때 주전 골리 박성제의 GAA는 5.92, SVP는 82.76%에 그쳤다.
지난해 4월 특별귀화로 태극마크를 단 캐나다 출신 달튼은 수문장으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 먼저 키부터 187㎝로 이상적이다. 골리가 가장 막기 어려운 퍽은 어깨 위로 넘어가는 것이다. 골문 천장을 향하는 슛을 저지하기 위한 키는 185~189㎝ 정도로 꼽힌다.
또 순발력과 민첩함도 갖췄다. 많은 골리들이 한 차례 슈팅에 이은 리바운드 골을 허용하는 경우가 잦은데 이 때 재빠른 두 세 번째 방어 동작이 필요하다. 퍽을 가슴으로 막거나 멀리 쳐내는 기술도 필요하다. 아이스하키에서 시속 170㎞에 달하는 슈팅을 막아내기 위해 동체시력이 중요한데 달튼은 동체시력도 빼어난 편이다. 동체시력이 좋으면 남들보다 더 빨리 보고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 받는 항목은 냉정함이다. 골리가 흔들리면 그 경기는 그르치기 쉽다. 야구에서 선발 투수가 마인드 컨트롤이나 감정 조절에 실패하면 금방 무너지듯이 골리도 마찬가지다. 달튼은 “상대 슈팅에 큰 부담감과 압박을 받지만 그 순간에 집중하려고 한다”며 “골을 많이 먹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빨리 털어내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신선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대표팀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3경기 연속 득점에 성공한 김기성은 “3연승이 처음이라 매우 기쁘고 흥분된다”며 “이번에 우승 하면 한국 아이스하키가 성장하는데 있어 큰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상우(이상 안양 한라)는 “톱 디비전에 올라갈 기회가 눈 앞에 오니까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해보고 싶다”고 기대했다.
코칭스태프는 아직 2경기가 남은 만큼 선수들이 들뜨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다. 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백 감독은 라커룸에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니까 마지막 경기까지 긴장을 풀지 말자”고 선수들에게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28일 새벽 2시30분 오스트리아와 4차전을 치른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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