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몰락으로 사상 초유 野野 대결
개인기보다 정치세력 역량 판단해야
깨어 있는 시민들 참여 민주주의 중요
행복한 고민이다. 누굴 찍어도 정권교체다. 야야(野野) 대결이라니. 1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구도다. 당시 정치 여건이 야당에 썩 불리하진 않았다. 보수 정권의 잇단 실정에 국민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그런데도 야당은 지리멸렬했다. 집권 의지도 비전도 보여 주지 못했다. 한국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무기력한 야당이었다. 그저 친문(親文)ㆍ비문(非文)으로 나뉘어 주도권 다툼하느라 허송세월 했다. 총선을 앞두곤 당마저 쪼개졌다. 새누리당 압승은 상식이었다. 200석 대승이 예고됐다.
정권교체 물꼬를 터 준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그는 새 보수주자에게 민주적 방식으로 권력을 넘기길 거부했다. 온갖 무리수로 끝까지 권력을 지키려 했던 막장 공천이 민심 이반을 불렀다. 최순실 게이트는 여당의 총선 참패가 부른 필연이었다. 촛불이 결정타를 날렸다. 차가운 광장에서 칼바람을 뚫고 탄핵을 외친 1,600만 국민이 조기 대선을 이끌었다.
대선은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며 혁신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국가 이벤트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참담한 실패로 보수는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 TV토론만 보면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가장 돋보인다. 그래도 대안이 되긴 어려울 성싶다. 새 정부 앞에는 초유의 안보ㆍ경제 위기 등 숱한 암초가 기다린다. 단독 정권으로 험난한 파고를 이겨내긴 쉽지 않다. 국회권력을 감안하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은 물론, 탄핵에 동조한 일부 보수까지 끌어안을 수도 있다. 초미니 정당으론 힘이 부친다.
정치에서 리더 역할은 중요하다. 유권자가 대선주자의 도덕성과 자질, 능력 등을 꼼꼼히 따져보는 이유다. 하지만 후보 개인기만 보고 대통령을 고르는 건 위험하다. 대선은 국가 미래를 좌우할 정치세력 간 총체적 역량 경쟁이다. 그런 측면에서 야권의 두 유력 후보를 떠받치는 정치세력은 여전히 미덥지 않다.
호남은 2014년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을 대거 당선시켰다. 2012년 대선과 총선에 패배하고도 반성하지 않는 야당에 실망한 탓이다. 국민의당은 DJ 집권 이후 보수 못지않은 기득권 집단으로 전락했다. 동교동계 한광옥, 한화갑, 김경재 등이 박근혜정부에 몸담은 건 우연이 아니다. 독재정권이 종언을 고하면서 그들의 역할은 사실상 끝났다. 상당수 국민의당 의원도 진보 성향이라고 보긴 어렵다. 호남 출신이어서 진보 정당에 몸담았을 뿐이다. 끊임없이 구여권과 연정을 모색하더니 냉전보수의 색깔론 프레임에 편승해 당 정체성의 상징인 햇볕정책마저 부인하는 게 그 방증이다.
지난 총선에서 왜 국민의당을 지지했냐고? 친문 세력이 미워서다. 호남은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93.2%의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DJ 못지않은 열렬한 지지였다.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 국가균형발전을 통해 호남 차별이 사라지길 원했다.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 호남 출신 인사수석과 검찰총장을 임명하는 등 나름 노력했으나, 중반기를 넘기면서 사실상 ‘부산정권’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민주당은 야당 본류다. 10년 집권 경험도 있다. 그런데 핵심부 일부 운동권 출신이 마뜩잖고 거슬린다. 수십 년째 운동권 경력을 우려먹는 ‘싸가지 없는 진보’가 많아서다. 이들의 이념과 구호는 진보적이되 행태는 누구보다 수구적이다. 민주 대 반민주의 낡은 프레임과 도덕적 우월의식에 빠져 나태하고 무능하다. 자리 보전에는 뛰어나지만 미래 비전과 시대 담론을 주도할 역량도 한참 모자란다.
호남은 어떤 정권교체를 택할 것인가. 지금은 진보의 가치가 절실한 시대다. 진보가 잘 해야 냉전수구의 낡은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 사회적 약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다. 호남은 진보의 심장부다. 늘 변화와 새 정치의 출발이었다. 80년 광주항쟁의 정신은 6월 민주항쟁과 촛불항쟁의 토대가 됐다. 그래서 호남의 선택이 중요하다. 정권교체는 끝이 아닌 시작이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협력과 견제는 계속돼야 한다. 누가 반칙과 특권의 기득권을 깨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들 후보인가. 이제 선택만 남았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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