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ㆍ2001년 8월ㆍ방한한 쩐 득 르엉 베트남 국가 주석에게)
“우리 국민은 마음의 빚이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ㆍ2004년 10월ㆍ호찌민 묘소를 참배하면서)
“대한민국은 베트남이 크게 발전하기를 바라는 나라라는 점을 알아달라.” (이명박 전 대통령ㆍ2009년 10월, 호찌민 묘소를 참배하면서)
베트남전 당시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던 한국. 1992년 베트남과 수교 이후 한국 대통령들은 베트남 정부에 여러 차례 유감을 표시했다. 이는 단지 외교적 수사만은 아니다. 적지 않은 한국인들은 베트남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다. 수교 25년에 이른 현재 한국은 베트남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 두 번째로 많은 공적개발원조(ODA)를 하는 나라, ‘사돈의 나라’가 되었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 문제는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베트남에는 한국인들의 이런 생각을 ‘한국인 중심 감정’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자신들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겼고, 그 미국과도 지금 가깝게 지내는데, ‘미국의 우방’ 자격으로 참전한 한국이 “사죄하듯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참전 한국인 학살, 박물관에서 알아”
호찌민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은 ‘전쟁 증적(證跡) 박물관’은 바로 베트남인들의 이런 의지를 보여주는 산물이다. 민간인을 상대로 한 미군의 학살과 방화, 강간 등의 만행과 고엽제 피해자 사진들이 전시된 곳이다. 관람객들은 그 사진들 앞에서 말을 잃은 채 팔짱을 끼거나 조용히 분노를 삭인다.
종전 42주년 기념일(4월 30일)을 1주일 앞두고 지난 23일 찾은 박물관. 직원 응우옌 티 뚜 짱(25)씨는 “하루 평균 4,000명 가량이 방문한다”며 “외국인들이 주를 이룬다”고 소개했다. 최근에는 국내 여행이 활성화하면서 베트남 관람객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전시 내용은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이다. 박물관에서 만난 20대 후반 한 베트남 청년은 “학교에서는 베트남전쟁을 ‘이긴 전쟁’ 중심으로 배웠지 피해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배우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참전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사실도 박물관에 와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는 현재까지 미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 정부에 베트남전과 관련해 어떤 사과나 보상도 요구하지 않고 있다. 그보다는 경제 성장을 통한 국력 신장에 모든 정치ㆍ외교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에 무비자입국 혜택을 주고 있는 것도 이런 노력 중 하나다. 베트남 내부적으로는 이긴 전쟁인 만큼 사과 요구가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과거사와 관련된 베트남 정부의 공식 입장은 ‘과거를 닫고 미래를 열자’(Khep lai qua khu mo huong tuong lai)는 구호가 유일하다. 1986년 경제 개방ㆍ개혁을 목표로 한 도이머이(쇄신) 정책을 시행하면서 내놓은 구호다. 황건일 호찌민 한국국제학교 이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당시 유감을 표명하자 베트남 정부는 이튿날 ‘우리는 승전국’이라는 제목의 인민일보 사설을 통해 과거보다는 미래를 중시하자는 과거사 관련 기본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현우 한국베트남평화재단 팀장은 “‘과거를 닫다’(Khep lai qua khu)에서 ‘닫다’라는 뜻의 ‘Khep’은 완전히 닫는다는 게 아니라 잠깐, 살짝 무엇을 걸어 둔다는 뜻”이라며 “과거는 언제든 열릴 수 있는 만큼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베트남 주변국은 실리찾기 집중
베트남은 통일된 지 4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과거사 거론은 금기시 된다. 내전을 치른 남북간 지역감정 골이 깊은 탓이다. 관련국들도 베트남의 이런 입장을 존중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베트남의 환심을 사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2014년 기준으로 15억달러 규모의 ODA 사업을 통해 베트남 경제성장을 돕고 있다. 이는 2위인 한국(1억7,884만달러)보다 8배 이상 많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1944,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베트남 북부 광찌성~타이빈성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의 쌀을 군수용으로 공출하면서 현지인 200만명을 아사시킨 기록이 있다. 호찌민이 “프랑스가 2차 대전 동안 100만명을 잃었는데 베트남에서는 기근으로 6개월 만에 200만명이 죽었다”며 분개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당시 베트남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200만명이 사망했지만, 현재 젊은 베트남인들 중 일본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당시 기근에 시달려 조부가 남쪽으로 내려 왔다는 딘 비엣 지웅(33)씨는 “과거 일본이 그랬을지언정 지금 베트남에 잘하고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다.
미국도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수도 하노이를 방문한 이후 급속이 가까워져, 이제 양국은 무기거래까지 가능한 사이가 됐다. 베트남-미국간 직항 노선 신설도 임박했으며, 지난 21일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베트남을 찾아 양국 협력 강화를 다짐하고 갔다. 또 앞서 국경일 행사에서는 미국 정부가 베트남인 고엽제 피해자들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화해 제스처를 보내기도 했다.
한국 시민사회에서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등치해 보는 시각도 있다. 피해자로서 기억을 갖고 있기에 베트남 문제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반론도 나온다. 교민 1세대 이모씨는 “위안부 문제는 식민지 하에서 일방적으로 일어난 것이지만, 베트남에서의 일은 먼저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발생한 만큼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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