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LG전자 부스 방문객들의 눈길은 단연 이 제품에 쏠렸다. 두께 단 4㎜, 무게는 7.5㎏에 불과한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W’다. 국내 출고가 1,400만원으로 LG전자 TV 중 가장 비싼 올레드 TV W는 거치대에 거는 대신 벽에 자석으로 밀착하는 형태다. 그림자조차 생기지 않아 유리창을 통해 바깥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거는 TV’가 아닌 ‘붙이는 TV’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25일 서울 양재동 LG전자 서초R&D캠퍼스에서 만난 올레드 TV W의 디자이너들은 “이제까지 작업 중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2015년 디자인 베테랑인 이들에게 내려진 특명은 “화면 이외에는 어떤 것도 허락하지 말라” 였다. 디스플레이 자체가 빛을 내는 올레드(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의 최대 장점 ‘얇은 두께’를 가장 잘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김유석 수석연구원은 “항상 뭔가를 보기 좋게 꾸미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이었는데, 거꾸로 최대한 없애라고 해 출발부터 달랐다”고 말했다. 처음 제품을 기획하고 세상에 내놓기까지 꼬박 2년이 걸린 이유다.
화면만 남기고 다 덜어내자니 가장 큰 걸림돌은 부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거였다. TV에 들어가는 부품은 회로기판, 전원부, 방송 수신칩 등 수천개에 달해서 부피를 아무리 줄여도 물리적 한계가 있었다. 허병무 수석연구원은 “부품을 한 데 모아 세워도 보고 납작하게 눕혀도 봤는데 어떻게 해도 거슬리더라”라며 “감출 수 없다면 차라리 드러내 보자, 역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레드 TV W 화면의 짝꿍 ‘이노베이션 스테이지’는 그렇게 탄생했다. 연구원들은 소비자들이 TV 주변에 가장 잘 어울리는 기기로 ‘사운드바’(막대 형태 음향기기)를 꼽는다는 자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별도 사운드바에 모든 부품을 몰아 넣었다. 소비자 입장에선 TV를 사면 최고급 사운드바를 덤으로 가져가는 듯한 효과가 생겼다.


마지막 남은 숙제는 화면과 이노베이션 스테이지의 연결이었다. 박선하 수석연구원은 “연결 선이 화면 몰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각종 형태, 재질, 위치를 시도했다”며 “적합한 재질을 구하기 위해 동대문 시장을 층층마다 뒤지기도 했다”는 고생담을 전했다. 다양한 시도 끝에 최종적으로 납작하고 하얀 선이 구현됐다. 벽 밖으로 나와 있어도 있는 듯 없는 듯 시야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올레드 TV W의 개발 과정은 누구도 걸어 본 적이 없는 길을 걷는 것과 같았다. 김윤수 수석연구원은 “지금껏 출시된 TV 중에서 디자인 적으로 가장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자평하며 “참여 자체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유석 연구원은 “올레드의 특성을 반영해 구부렸다 폈다 할 수 있는 TV 등을 연구 중”이라며 “앞으로도 TV의 디자인 진화를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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