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에요." 이렇게 시작하는 연락을 가끔 받는다. 동물 책을 내는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반려동물과의 이별에 관한 책도 여러 권 냈고, 출판사 사이트에 관련 글도 올리다 보니 개, 고양이를 떠나 보낸 분들이 종종 연락하는데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이라고 운을 떼면 벌써 심장이 쿵쾅거린다. 어떤 후회와 아픔이 쏟아져 나올까. 아이를 보내고 느끼는 죄책감, 미안함, 후회∙∙∙.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노견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지인은 하필 아이가 떠나는 날 곁에 있지 못했다. "임종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나이든 부모님과 사는 나는 매일 이별 인사를 하며 산다", "매 순간 진심으로 인사했으니 크게 마음에 두지 말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곁을 지키지 않은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외출하면서 심심하지 말라고 던져주고 간 장난감 때문에 사고가 나서 아이가 떠난 경우는 어떤가. 더욱 힘든 건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산다는 것이다. 자신을 가해자로 만들고 나면 증언은 힘들어지고 가슴에 묻은 채 악몽과 함께 살아간다.
후회 없는 이별이 있을까. 교통사고로 세 살밖에 안 된 반려견을 보냈을 때, 아침까지 멀쩡하던 고양이가 돌연사했을 때 나도 모든 원망을 내게 돌렸다. '그때 만약'을 수없이 되뇌며 가슴을 쳤다. 마치 내가 생사를 주관할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떠나고 나면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고, 후회해도 때는 늦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침에 눈을 뜨고, 충만한 하루를 보내다가 모든 게 완벽한 순간 이별을 하는 건 드라마 속 여주인공인 '기타누락자'에게나 가능한 판타지다.
일본 소설 '아주 긴 변명'은 사고로 갑자기 이별하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소설을 쓰고, 같은 이름으로 영화화 한 감독 니시카와 미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남겨진 이들을 생각하며 썼다고 했다. 예고도 없이 벼락처럼 이별을 당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이야기. 그래서인가. 책을 읽으며 세월호가 떠올랐다. 무엇이 잘못 된지 모르니 자책이 깊어지고 변명도 길어진다.
소설 속 주인공은 사이가 소원했던 아내가 여행을 떠난 후 다른 여자와 만나고 있다가 아내의 사고 소식을 듣는다. 장례식장에서 울지도 못했다. 아내가 죽은 건 자신이 아내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최악의 타이밍에 최악의 방식으로 떠난 아내를 원망도 한다. 완벽한 이별은 아니어도 최악은 아니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나도 개가 교통사고로 떠났을 때, 갑자기 고양이가 떠났을 때, 그 순간에 한 말, 한 생각, 하지 못한 행동을 후회하고 자책했다. 책에서 엄마를 잃은 사내아이가 엄마가 마지막으로 차려준 음식에 짜증을 낸 일, 엄마의 사망 소식에 차라리 아빠가 죽었으면 좋았다고 생각한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있다가 터놓는 순간, 나도 내 속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아내와 함께 사고를 당한 친구의 남겨진 가족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이 있을 곳을 발견한다. 자기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자리를.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들이 있기에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서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간다.
주인공이 엄마를 잃은 아이에게 말한다. "쉽게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헤어지는 건 순간이야, 그렇지?" 그렇다. 나이든 반려동물과 살면서 남들보다 오래 함께 살아서 충분히 아끼고 사랑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 봤자 17, 18년은 순식간이고, 헤어짐은 순간이다. 매 순간 가까운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다.
주인공은 마침내 책의 마지막에 오로지 아내를 생각하고, 울었다. 아주 긴 변명의 마침표. 어떤 이별도 나의 잘못은 아니니, 너무 긴 변명은 그쳤으면. 소중한 이와 이별을 하고도 후회와 자책으로 울지 못했다면, 아름다운 봄날, 오로지 떠난 이만 생각하며 실컷 울 수 있기를.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무소의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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