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억원 떼먹은 유학알선업주
친구 신분증 도용 도피생활
지문 요구하자 70만원 건네
23일 오전 7시 45분쯤 서울 청담동 한 호텔 인근. 이모 경위 등 경찰관들이 불법 유턴하던 흰색 벤츠 차량을 세웠다. 운전자 김모(42)씨는 경찰의 운전면허증 제시 요구에 머뭇거리며 “평소 들고 다니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진 주민등록증 요구에는 호주머니에서 찾는 시늉을 하더니 “지금은 없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그럼 주민번호를 부르라”고 했다.
김씨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주민번호 숫자를 댔다. 그러면서 지갑을 만지작거렸다. 김씨가 부른 주민번호 조회 결과, 등록된 사진 속 얼굴과 김씨의 외모가 닮았지만 수상쩍은 김씨 행동 탓에 “본인 주민번호를 댄 게 맞냐”는 경찰의 추궁이 이어졌다. 김씨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성형해서 얼굴이 좀 변했다”고 둘러댔다. 이에 이 경위는 “본인 확인을 위해 지문 조회에 협조해달라”고 했다.
김씨는 갑자기 매만지던 지갑에서 5만원권 지폐 14장, 70만원치를 꺼내 돌돌 말더니 이 경위에게 건네면서 속삭였다. “고생하시는데 식사하시고 저는 보내주세요.” 거부하는 경찰에게 김씨는 세 차례나 뇌물을 찔러주려 했다. 매수가 통하기는커녕 호되게 혼만 난 그는 마지 못해 “평소 외우고 다니던 친구 주민번호를 불렀다”고 실토했다. 김씨는 무면허 운전자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현행범으로 체포돼 청담파출소로 간 김씨는 2007~2008년 대학 유학생들이 등록금과 기숙사비 등으로 송금한 5억8,000만원을 가로챈 혐의(업무상 횡령)로 실형 선고를 받고도 형 집행을 피해 달아난 유학ㆍ취업알선업체 대표로 밝혀졌다.
김씨는 2011년 10월 기소됐는데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2013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 받고 항소 없이 형이 확정된 이후 아내 명의의 벤츠 차량으로 버젓이 돌아다녔다. 그는 주민번호를 빌려준 친구의 얼굴과 유사하게 성형까지 한 것으로 경찰은 의심했다. 학생들에게 피해 변제도 안 했던 김씨는 이날 굵직한 금목걸이와 금반지 등을 착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김씨의 신병을 넘겨 받았고, 서울 강남경찰서는 김씨를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과 뇌물공여, 주민등록법 위반(타인 신분증 제시) 등 혐의로 별도 입건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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