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 인근 4층건물 리모델링
비용은 모금, 공사는 재능기부
20여명 숙식공간 무료 운영
노동법 교육ㆍ심리상담 역할도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중심으로”

“올해 우리 사회는 매우 중요한 경험을 할 겁니다. 이 땅에 처음으로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을 세우는 것입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24일 오전 서울 신길동의 다세대주택 건물 앞에서 노동운동가들과 건축가, 예술가, 대학생 등 20여명이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 앞에 있는 25년 된 4층짜리 벽돌건물은 7월 무렵 비정규직 노동자 쉼터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이날은 그 착공식이었다. 부당해고와 차별 등 핍박을 이유로 회사와 맞서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풍찬노숙에서 벗어나 잠이라도 달콤하게 잘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논의가 노동계를 중심으로 시작한 지 1년 9개월 만이었다.
착공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 건 예산 탓이었다. 접근성 등을 고려했을 때 영등포역 주변이 적정 부지로 낙점됐고, 땅을 매입하는 데 11억원이 들었다. 이를 위해 1년여 전부터 시민사회가 본격 모금에 나섰다. 지난해 7월 백기완 소장과 문정현 신부는 기금 마련 전시회를 열고 붓글씨, 서각을 판매했다. 두 달 뒤에는 8개 언론사 기자들이 비정규직 특별잡지를 만들며 판매 수익금을 보탰다(본보 2016년 9월3일자 24면). 각계로부터 기부금 쾌척도 이어졌다. 그 결과 건물 리모델링을 비롯한 총비용 14억여원 가운데 9억원 가량이 확보됐다. 나머지는 은행대출과 추가 모금을 통해 충당할 계획이다.
꿀잠은 주춧돌부터 지붕까지 건설 전문가 50여명의 재능기부로 지어진다. 실제 공사 또한 현장직 노동자들의 십시일반 품으로 이뤄진다. 공사를 총괄하는 이윤하 건축사사무소 노둣돌 대표는 “건설사에 공정을 맡기지 않고 우리 손으로 직접 집을 짓기 때문에 통상적인 기간보다 한 달 가까이 더 걸리지만, 사회적 연대로 세운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꿀잠이 문을 열면 한 번에 20~25명이 숙식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 농성 생활에서 더러워진 옷을 세탁할 수 있는 빨래방과 널찍한 공용 샤워실도 갖출 예정이다. 또 노동법을 잘 알지 못해 권리를 침해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실, 오랜 실업으로 심적 고통을 받는 이들을 위한 상담실 역할도 한다. 꿀잠은 무료로 운영되며, 온라인 사전 예약을 통해 사용할 수 있다. 조현철 사단법인 꿀잠 이사장은 “꿀잠이 쉼터 기능을 넘어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노동운동의 산실 기능을 하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부당해고로 600일 넘게 광화문에서 거리농성 중인 동양시멘트 해고노동자 이병열(39)씨는 “복직투쟁을 하는 처지에서 휴식은 사치일 수밖에 없지만, 죄인도 아닌데 행인들의 눈치를 보는 일에 지쳤다”며 “꿀잠이 지어지면 고공농성 중인 동료들과 찾아가 딱 하루만이라도 마음 편히 눈을 붙이고 싶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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