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9대 대통령 선거가 약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유력 대선주자들의 TV토론도 벌써 3차례(13일, 19일, 23일) 진행됐다. 하지만 매번 진행된 장시간 토론에도 남는 단어는 ‘세탁기’ 나 ‘주적’, ‘간철수’ 등을 포함한 자극적인 단어 뿐이다. 사회관계형서비스(SNS)에선 매 토론이 끝날 때마다 ‘대체 국민을 위한 공약은 언제 검증하냐’는 유권자들의 원성이 빗발친다.
궁금했다. 과연 유권자들이 본 대로 대선 토론은 부정적인 색깔의 ‘네거티브’만 난무했을까. 혹시 화려한 ‘수사’ 때문에 국민을 향한 진심이 과소평가되진 않았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토론문 속 특정 단어의 등장 빈도를 살펴봤다.
‘국민’의 점유율은 4.5% 뿐
1~3차 대선후보 토론문을 분석해본 결과 전체 토론 중 ‘국민’이라는 단어는 122회 사용됐다. 각 후보자가 발언한 문장 총 2,682개 중 비중을 따진 것으로, 여기서 ‘국민의당’ 과 같은 단어는 제외됐다.
후보별로 따져보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1차 토론 때 ‘국민’을 많이 언급했지만 2ㆍ3차로 갈수록 그 빈도는 줄었다. 특히 문 후보는 1차 토론 때 “국민 성장이 이뤄져야 우리 민생과 소비가 살아난다”, “사면권은 국민의 위임을 받은 것으로 국민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행사하겠다” 등 문장을 약 14회 정도 썼지만, 2차 토론에서 3회, 3차 토론에서 6회로 그 수가 떨어졌다. 유 후보 역시 1차 때 7회, 2차 6회, 3차 3회 등으로 ‘국민’ 언급 수가 갈수록 감소했다.
다만 국민을 직접 설득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단어를 상대적으로 많이 쓴 건 유 후보였다. 문 후보가 2ㆍ3차 토론에서 각 1회씩 이를 언급한 반면, 유 후보는 1~3차 토론 중 각 1ㆍ3ㆍ2회를 썼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국민’이라는 단어를 꾸준히 언급했다. 1~3차 기준 안 후보는 11ㆍ11ㆍ17회, 심 후보는 10ㆍ10ㆍ14회다. 두 후보간의 차이는 역시 ‘국민 여러분’에서 분명해진다. 안 후보가 ‘국민 여러분’을 부른 건 1~3차 중 3차 토론의 마무리발언에서 딱 한번이다. 심 후보는 1~3차에서 각각 1ㆍ2ㆍ4회 불렀다.
홍 후보는 세 차례 토론을 거치며 ‘국민’을 언급하는 횟수가 꾸준히 늘었다. 다만 다른 후보에 비하면 숫자는 적다. 1~3차 순으로 1ㆍ4ㆍ5회다. 이중 3차 토론에서 쓰인 문장 중 두개는 “45년 전 그 사건은 정말 국민에게 죄송하다”등 ‘돼지발정제’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북한’ 자주 등장했지만 ‘청년’ 등 세대언급은 안보여
3차례 토론을 꼼꼼히 살펴본 국민들이라면 이미 짐작했을 것이다. 북한 관련 이슈에 대한 언급은 ‘국민’의 두 배에 달했다. 총 언급 수는 208회로, 전체 문장 중 7.8%다.
1차 토론에서는 북한 문제 언급량이 많지 않았다. 유ㆍ안 후보가 각각 11회, 9회 정도고, 심 후보의 경우 북한에 대한 발언은 1차례만 했다. 반면 2차 토론에서는 전체 언급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문 후보의 경우 북한 관련 문장을 27회 언급해 1차 때보다 20회 더 많이 이야기했다. 이는 홍ㆍ유 후보가 문 후보를 향해 여러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홍ㆍ유 후보 역시 2차 토론 당시 각각 21ㆍ26회씩 관련 문장을 말했다.
3차 토론에선 2차에 비해 북한 관련 언급이 줄었다. 하지만 그 동안 북한 관련 문장 비중이 많지 않았던 심 후보(25회)가 의외로 가장 관련발언을 많이 했다. 전체 토론에서 북한 관련 문장을 가장 많이 말한 건 유 후보(총 57회)다. 홍 후보는 42회로 두 번째다.
반면 3차례 토론 중 세대 언급은 보이지 않았다. ‘중장년’ ‘노인’에 대한 언급은 전무했고 그나마 ‘청년’만 몇 번 나왔을 뿐이다. 1차 토론에서 문ㆍ홍ㆍ심 후보는 각각 5ㆍ6ㆍ3회 청년을 언급했다. 2차 토론에서는 1ㆍ4ㆍ1회, 3차에서는 홍준표 심상정 후보만이 각각 3회씩 청년얘기를 했다. 홍 후보의 경우 그 중 두 문장에선 “북한청년 100만 일자리 만들어주겠다는 후보를 찍겠나” 라며 ‘북한청년’을 언급했다. 안ㆍ유 후보에는 3차례 모두 청년을 한번도 말하지 않았다.

미성숙한 토론문화, 흉내만 낸 토론형식
사실 북한이 많이 언급된 건 3차례 토론의 첫 주제가 매번 ‘북한의 도발과 한반도 위기’였던 이유도 컸다. 토론은 상호작용인 만큼 질문에 따라 답변이 나올 수 밖에 없고, 그만큼 다른 화제보다는 북한문제에 더 경도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계소득(1차)’, ‘조세형평(2차)’등의 주제도 등장했다는 점에서 ‘질문 탓’ 만을 할 순 없다.
‘국민’이라는 단어를 적게 언급했다고 해서 이들이 국민 생각을 적게 한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런 결과가 나온 진짜 원인은 미성숙한 토론 문화 속에서 미국의 ‘스탠딩토론’ 형식을 어설프게 베낀 데 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김은정 경희대 소통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은 “5명의 후보자에게 질문ㆍ답변 구분없이 시간만 주어지다보니 특정 후보에게 질문이 몰릴 수 밖에 없고, 결국 질문에 답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국민ㆍ정책 이야기를 말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의 최종 청자는 국민이지만 우리나라 대선후보들이 서로만을 향해 대화하는 것 역시 원인은 같다. 김 연구원은 “미국식 스탠딩토론의 묘미는 후보자들이 방청석의 유권자들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설득하는 것”이라며 “우리 대선토론은 청중 없이 형식만 빌려와 더더욱 후보자들간의 대화만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남은 3회의 토론은 경제ㆍ사회분야 및 자유주제로 진행될 예정이다. 주제가 바뀐만큼 대선후보들도 민생공약을 얘기할 수 있게 될까. 유권자들이 끝까지 지켜 볼 일이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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