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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사(思)의 재발견

입력
2017.04.2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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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에서 공자는 군자라면 구사(九思)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때 군자란 임금을 뜻한다. 구사(九思)라고 해서 아홉 가지 생각이 아니다. 그 첫째가 시사명(視思明)인데 엉터리 번역 수준으로 옮기면 “볼 때는 밝음을 생각하라”가 된다. 여기에 황당한 풀이, 즉 “사물을 볼 때는 밝게 보라는 말이다”가 더해지면 헤어날 길이 없다.

이 때 본다는 것은 시사(視事), 즉 임금이 나라의 업무를 본다는 뜻이다. 그러면 명(明)에 관해 논어에 나오는 딱 한 번의 풀이와 부절처럼 맞아 떨어진다. 자장(子張)이라는 제자가 명(明)의 뜻을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서서히 젖어 드는 참소(讒訴)와 살갗을 파고드는 하소연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그 정사는 밝다[明]고 할 수 있다.” 참소란 요즘 식으로 하면 동료나 라이벌에 대한 음해나 중상모략이다.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서서히 젖어 드는”이라는 표현이다. 그만큼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밝지 못하면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가족이나 친족 혹은 총애하는 측근의 간절한 부탁을 뜻하는 하소연도 “살갗을 파고드는”이라고 했다. 끊어내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것을 단호히 끊어낼 때 명군(明君)이 되는 것이고 그것을 못하면 암군(暗君)이 된다.

일을 살펴보는 데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의 명(明)이다. 즉 사(思)는 그냥 생각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행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을 놓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긴 이런 생각이라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냥 잡생각만 해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자신 있게 나머지 팔사(八思)도 제대로 풀어낼 수 있는 길을 확보했다. 둘째는 청사총(聽思聰)이다. 청(聽) 또한 정치와 관련된다. 조선 시대 때는 정치라는 말 대신에 청정(聽政), 혹은 청단(聽斷)이란 말을 더 많이 썼다. 정사를 듣고서 결단한다는 말이다. 사실상 시사(視事)와 같은 말이다. 따라서 청사총(聽思聰)이란 정사를 듣고서 결단하는 데 가장 본질적인 것은 총(聰), 즉 귀 밝음이라는 뜻이다. 귀가 밝다는 것은 청력이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다. 아랫사람이 무슨 말이나 보고를 할 때 그 자리에서 그 말이나 보고가 제대로 된 것인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심지어 그 숨은 의도까지 읽어낸다면 지도자로서 더 할 나위 없는 자질이다.

색사온(色思溫), 안색을 취할 때는 온화해야 하며 모사공(貌思恭), 몸가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손함이며 언사충(言思忠), 말에는 진실함이 가장 본질적이며 사사경(事思敬), 일을 할 때는 삼가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공자는 줄곧 논어의 다른 데서도 경사(敬事)를 강조한다. 그런데 기존의 번역서들은 대부분 이를 “일을 공경하라”고 옮긴다. 공손[恭]과 삼감[敬]의 차이조차 무시한 엉터리 번역이다. 경사(敬事)에서는 경(敬)이 아니라 사(事)가 동사다. 삼가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면밀하게 준비하라는 말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일을 끌고 나가 마침내 좋은 결과를 얻어낸다는 뜻이다.

결국 여기서 사(思)는 ‘생각하다’보다는 ‘이렇게 하라’는 뜻이다. 의사문(疑思問), 의문이 나면 질문을 하고 분사난(忿思難), 화가 난다고 해서 마구 행동하지 말고 만일 그렇게 했을 때 닥쳐올 수 있는 어려움을 먼저 생각한 다음에 처신해야 하며 끝으로 견득사의(見得思義), 이득이 생겼을 때는 덥석 제 것으로 하지 말고 과연 그렇게 해도 마땅한지를 반드시 점검하라는 말이다. 이익을 버리고 의로움을 취하라는 식의 번역은 오역이다. 주말에 대선후보들의 TV토론을 보면서 구사(九思)는커녕 일사(一思)도 제대로 갖춘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가 눈 밝지 못해서 그랬던 것일까?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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