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4.25

미국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D.C 시위ㆍ행진의 원조는 마틴 루터 킹의 1963년 행사일 것이다. 이후 워싱턴D.C 링컨기념관 광장과 의사당 남서쪽 인디펜던스 거리, 내셔널 몰 등은 정치나 법ㆍ제도의 지체와 부실에 대한 성토와 압박의 거점으로 자리잡아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다음날인 지난 1월 21일 ‘워싱턴 여성 행진(Women’s March on Washington)’이 가장 최근의 대규모 행사였다. 여성 및 성소수자 인권과 이민정책 개혁, 각종 차별 철폐 등이 이슈였던 그 행사에는 현장 시위 인원 50만 명을 포함해 미국 내에서만 최소 300만 명이 참여했고, 세계 168개국에서 동조 행진이 전개됐다.
‘여성 삶(생명)의 행진(March for Women’s Lives)’이란 이름으로 열린 2004년 4월 25일의 워싱턴 여성행진은 워싱턴에서 열린 역대 행사 중 단일 공간 최대 규모 행사로 기억된다. 미국 주요 여성인권단체들이 총력을 기울여 조직한 그 날 행사 참가자는, 주최측 집계 115만 명(AP집계 50만~80만 명)이었다. 오전 10시부터 내셔널 몰에서 시작된 행사는 거리 행진과 동시다발적 집회로 이어졌고, 공식 연사만 약 120명에 달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케이트 미첼먼, 포크 그룹 피터 폴 앤 메리, 수전 서랜든, 애슐리 주드, 우피 골드버거, 줄리언 무어, 클린턴 행정부의 미국 최초 여성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등이 주요 참가자로 꼽혔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들 세계적 명사들도 행진 대열의 맨 앞줄이 아닌 중간에서 일반 시민들과 섞여 한 명의 여성으로서 참여했다는 점이었다.
현안은 한 해 전인 2003년 제정ㆍ발효된 ‘부분출산 낙태금지법(Partial-Birth Abortion Ban Act)’이었다. 부분출산(partial Birth)이란 산모의 자궁을 확대해 태아의 몸 일부를 끌어낸 뒤 약물을 투입해 낙태하는 방법으로, 주로 임신 중기(15~26주) 이후 이뤄진다. 법은 금지 여부를 주 정부 재량에 맡기도록 허용했지만, 낙태 찬성론자들은 그 법이 1973년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 취지에 역행하고 여성의 임신 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당일 워싱턴을 떠나 있었다. 연방대법원은 2007년 ‘곤잘레스 대 카허트(Gonzales vs. Carhart)’ 재판에서 저 법을 합헌 판결했고, 그 싸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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