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서점들 잇따라 독점판매
기획 단계부터 작품성 등 고려
반드시 팔릴 고전 선택 재출간
한정판 차별화가 새 독자 창출
광고ㆍ사은품 등 마케팅도 한몫
#30대 직장인 이은선(가명)씨는 최근 샬롯 브론테의 고전소설 ‘제인에어’를 다시 샀다. 대학시절 동명 영화를 보고 구입한 책이 서재에 있지만 빨간머리 앤을 닮은 새 표지가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약간의 (인터넷서점) 마일리지를 추가로 내면 표지 캐릭터를 그려 넣은 맥주잔까지 딸려와 2권을 사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시절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표지만 신물 나게 봤던 김성열(가명)씨는 지난해에야 “20년 만에 제대로 하루키와 인연”을 맺었다. 출판사 민음사가 ‘노르웨이의 숲’ 출간 30주년을 맞아 펴낸 한정판을 구입한 것. 일본 초판 표지를 그대로 사용한 이 책은 3000부가 한꺼번에 팔렸다.
스테디셀러의 표지를 바꿔 특정 서점에서만 판매하는 ‘리커버 독점판매’가 출판계의 새 경향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4월 교보문고의 ‘리커버 K’ 시리즈를 시작으로 불기 시작한 ‘리커버’ 바람에 인터넷 서점 예스24, 알라딘이 가세했고, 이달 인터파크가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 리커버 북 단독 판매에 나서면서 출판계 주요 트렌드로 형성되고 있다.
리커버 북 유행은 2014년 도서정가제(도정제) 시행에서 비롯됐다. 할인 판매가 주요 마케팅 수단이었던 세계문학전집의 할인 판매가 불가능해져 40%가량 매출이 하락하면서 나온 대응책이 리커버 북이다. 박정남 교보문고 도서구매팀장은 “세계문학전집은 전집 디자인을 동일하기에 각 책은 개성이 없는 편이지만 콘텐츠 신뢰도는 높은 편”이라며 “마케팅에 따라 매출이 높아질 수 있으니 표지를 바꿔 재출간하는 방안을 각 출판사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마케팅 이벤트로 제작한 리커버 북이 ‘완판’(완전 판매) 이변을 일으키면서 대형 서점들이 관심을 갖는 사업이 됐다. 교보문고에서 독점 출간된 리커버 북 17종 대부분이 매진됐다. 조선영 예스24 도서1팀장은 “3~5권으로 구성된 세트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완판됐다”며 “일부는 추가 인쇄해 판매 중”이라고 말했다. 송현주 인터파크 도서 MD는 “서점 입장에서는 책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책을 어떻게 파느냐’도 중요한 문제”라며 “(수익성이 좋은데다) 책 선정, 커버 디자인, 판매 방법에서 서점 출판사 담당자가 책의 성격을 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리커버 북의 주요 독자층은 서점마다 다르다. 예스24의 경우 30, 40대 구매율이 각각 37.3%, 35.1%로 가장 높은 반면 교보문고는 20~30대가 주를 이룬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스테디셀러의 독자와 그 책이 리커버 북으로 재출간됐을 때 독자가 각각 다르다”며 “해당 책을 알지만 읽지 않았다가 리커버 북 출시 같은 특별한 계기로 읽게 되는 독자들이 있다”고 분석했다. 장 대표는 “리커버 북이 새 독자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다”고 도 덧붙였다. 박정남 팀장도 “리커버 북 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펭귄 시리즈는 권당 2만~3만원에 수천 부가 다 팔리는데 이때 새로 회원 가입을 하거나 새롭게 책을 구매하는 독자가 많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고전영화 재개봉 열풍처럼 향수를 자극해 충성 독자들이 리커버 북을 재구매하는 하는 팬덤 현상도 있을 수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전망했다.
출판 관계자들은 리커버 북 인기 비결로 “시장에서 검증된 책을 내놓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출판사가 서점 납품용으로 제작하고 반품이 없기 때문에 기획 단계부터 반드시 팔릴 책을 리커버 북 제작 대상 선정한다는 설명이다. 송현주 MD는 “무엇보다 완판이 목표이기 때문에 판매를 보장할 수 있는 책을 선정한다”며 “해당 책의 작품성, 작가의 명성, 기존 판매량, 출간 시점 등 여러 이슈를 고려한다”고 말했다. ‘숨결이 바람 될 때’ 같은 최신 베스트셀러를 일부 제외하고 리커버 북 중 고전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이런 제작 환경의 영향이 크다.
대형 서점이 자체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리커버 북을 소개하거나 팝업 광고를 하는 점도 완판에 도움을 주고 있다. 박정남 팀장은 “서점 입장에서는 다른 책에 비해 마케팅에 더 신경 쓰고 비용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우리만 이 책을 판다’는 차별화가 매력적”이라고 밝혔다.
리커버 북이 예쁜 표지 디자인을 지닌 한정판이라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킨다는 분석도 많다. 장은수 대표는 “콘텐츠가 다양해지면서 ‘읽기 플러스 알파’를 충족시켜 줄 때 책을 사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콘텐츠의 질이 확인된 데다 표지가 고급인 한정판은 책의 물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최근 독자 취향에 맞다”고 말했다. 박정남 팀장은 “책 표지 디자인을 적용한 사은품 증정도 구매 결정의 주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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