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 성공 가능성에 위험 감수
곳곳서 운행 중단 피해 잇따라
일본에서 전철 내 성추행 의심범이 선로 쪽으로 뛰어내려 도주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민 수만명의 출퇴근이 지연돼 막대한 불편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용의자가 도망가다 반대편 열차에 치이거나 감전사고를 당할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추행 의심범들은 신속히 현장을 벗어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다.
이들이 철로를 도주 경로로 선호하는 이유는 추적하는 쪽도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도쿄도(東京都) 내에서는 최근 이런 사례가 급속히 늘고 있다. 지난 13일 오전 7시45분쯤 JR소부선(總武線) 료고쿠(兩國)역에선 여중생 2명을 추행한 것으로 지목된 남자가 “내가 그러지 않았다”고 외치며 선로에 뛰어내리면서 전동차 운행이 15분여간 중단됐다.
지난달 14일 아침에는 이케부쿠로(池袋)역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져 도쿄시내 교통의 동맥격인 야마노테선(山手線)과 사이쿄선(埼京線)이 멈추면서 3만여명이 발을 동동 굴렀다. 29일 밤에는 아카사카(赤坂)역에서 28분간 운행이 지연돼 4만여명이 이동하지 못했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이후에만 선로도주 사례가 6건이나 있었고 모두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사라져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철도법상 정당한 이유 없이 선로에 들어가는게 금지돼 있음에도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다.
선로 도주를 하다가 반대편 열차에 치일 수도 있고, 선로 옆에는 고압 송전선에 감전될 우려가 크다. 도쿄 지하철의 경우 송전선 전압은 600볼트다.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 있는 수준이다. 2003년에는 도쿄 우에노(上野)역에서 뛰어내려 도망친 사람이 전동차에 받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도쿄지하철 당국은 “전철구간이 아닌 지하철에선 터널로 도망치더라도 다음 역에서 붙잡힌다”고 경고하는 등 예방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 오사카(大阪) 시영 지하철에선 선로로 탈출해 1km를 도망간 남자가 역무원에게 붙잡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선로로 도망가는 이유는 일단 성추행 의심을 받고 신고자와 함께 역무실에 가면 현행범으로 잡힌다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경찰당국은 신고가 있다고 반드시 체포되는 것은 아니라며 제3자의 목격여부 등을 검토한다고 하지만 분위기상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억울하게 몰리지 않으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현장에서 사라지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선로 진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스크린도어 설치를 더욱 서둘러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하지만 일본에선 지하철 구간 외에 지상에서 운행하는 전철구간이 많은데다 지하철 역사가 길어 도쿄의 오래된 역은 플랫폼 공간이 좁아 설치가 힘든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취객이 선로에 떨어져 사망하거나 자살사고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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