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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을 무장해제 시키는 남자 정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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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을 무장해제 시키는 남자 정봉주

입력
2017.04.2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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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회의원ㆍ팟캐스트 진행 거쳐

SBS 라디오 ‘정치쇼’ 진행 맡아

탈권위주의 정치ㆍ생활 정치 표방

“라디오서 정치인이 신념 밝히면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국회”

정봉주 전 통합민주당 의원은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유가족들을 꾸준히 도와 왔는데, 최근 일이 잘 풀리는 걸 보면서 하늘에서 아이들이 도와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정봉주 전 통합민주당 의원은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유가족들을 꾸준히 도와 왔는데, 최근 일이 잘 풀리는 걸 보면서 하늘에서 아이들이 도와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그런데 선대위가 뭡니까?” 열띤 토론 도중 불쑥 던져진 질문에 패널들이 당황한 기색이다. “선거대책위원회의 줄임말”이라는 답변과 함께 선대위의 구성과 역할에 대한 설명이 잠시 끼어든다. 진행자가 뜻을 몰라서 물었을 리 없다. “정치인들은 당연한 듯 쓰는 말이지만 청취자 중엔 모르는 분들도 있을 거란 말이죠. 그 분들과도 함께하는 방송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덕분에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도 금세 ‘정치 고수’가 될 것 같다.

‘봉도사’라는 별명으로 더 친숙한 ‘정계의 입담꾼’ 정봉주(57) 전 통합민주당 의원이 라디오 DJ로 변신했다. 지난달 6일부터 SBS 라디오 ‘정봉주의 정치쇼’(월~토 오전 10시 30분)를 이끌고 있다. 150만 청취자를 거느린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와 벌써 100회를 돌파한 교통방송 TBS TV ‘정봉주의 품격시대’, 종합편성채널 채널A ‘외부자들’을 거쳐 마침내 ‘지상파 입성’이다. 만담 같은 재미에 청취자들이 몰려든다. 지난 10일부터 30분 확대 편성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보이는 라디오’ 생중계도 하고 있다. 최근 서울 목동 S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만난 정 전 의원은 “요즘 103.5 채널(SBS 라디오)을 정봉주가 먹여 살리고 있다는 말이 있더라”며 껄껄 웃었다.

‘정봉주의 정치쇼’는 “탈권위주의 정치, 웃음이 있는 정치, 생활의 정치”를 표방한다. 웬만한 예능보다 재미있다. “공자도 ‘골계미 즉 유머가 없는 사람은 권위주의로 흐르고, 권위주의는 반드시 부패한다’고 했어요. 고 김대중 대통령은 ‘3분 안에 청중을 웃기지 못하면 그 연설은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죠. 그런 정치인들이 마이크 잡으면 사람들이 다 떠나요. 정치는 재미있어야 해요.” ‘정치에 무관심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말을, 그는 ‘자본주의적 버전’으로 설명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식당에서 밥 먹고 나오면서 식당 주인에게 마음대로 결제하라고 신용카드를 맡겨버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내가 낸 돈으로 좋은 식재료를 샀는지, 몸에 해롭지 않은 음식을 만들었는지 들여다봐야죠. 한마디로 내 돈 ‘삥땅’ 안 칠 사람을 뽑는 게 정치예요. 정치는 생활의 문제입니다.”

정 전 의원은 논쟁을 벌이는 여야 정치인들 한가운데서 분위기를 조율한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은 “주먹 날아갈 것 같으니 떨어져 앉으시라”는 그의 입담에 금세 누그러진다. 싸움을 붙일 때도 “고춧가루 뿌려보라”는 말로 희화화한다. “웃는 순간 사람들은 무장해제 되고 대화할 준비를 합니다. 우리 프로그램에 오면 여야 정치인들이 다 친해져서 돌아가요. 정치 외곽에서 여야와 진보ㆍ보수가 장벽을 허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예능화된 정치 콘텐츠가 정치의 연성화, 가십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외부자들’만 해도 ‘라디오스타’ 같은 ‘떼토크’ 예능이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토론’으로 받아들여 의아했다”며 “그러니 정치가 더 연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주가조작 및 횡령 의혹을 제기했다가 허위사실 유포죄 등으로 1년간 복역했고 2022년 말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됐다. 복권돼도 두 번 다시 여의도에 갈 생각은 없다. “초선 때 3선, 4선 의원이 할 일을 다 했고, 정치를 빙자한 생활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정치를 넓은 의미로 해석하는 그에겐 “방송도 정치”다. “정치인들이 내 방송에 나와서 자신들의 신념을 펼친다면 방송이야말로 살아 있는 국회 아닌가요?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방송이고, 국민들과 가까이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방송이라면, 거기에 있어야죠. 이미 제 운명의 결정권은 대중의 바다에 던져졌어요.”

그는 앞으로 프로그램의 외연을 넓혀 방송인 김제동과 가수 이승환, 김흥국 등 사회적 발언을 해온 연예인들도 초대해 정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한다. “그러다 청취율 1위 ‘컬투쇼’도 금방 넘어서겠다”고 덕담을 건네자 ‘봉도사’가 유쾌한 입담으로 화답했다. “투자 시간 대비 인기는 이미 뛰어넘지 않았나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정봉주 전 의원은 “방송을 통해 ‘정치란 국민들이 존중 받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정봉주 전 의원은 “방송을 통해 ‘정치란 국민들이 존중 받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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