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DA 원장 채용, 지원자 몰렸는데 돌연 중단
군 복무자 보상방안 시급하다더니 발표 연기
방위사업감독관제 1년 성과 홍보, 무기한 늦춰
대선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군 당국이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 이미 진행하던 인사채용도 미루고, 행여 후보들의 대선공약에 흠집이라도 날까 정책발표는 최대한 늦추면서 눈치만 보는 모양새다. 국가안보와 장병들의 사기 진작이라는 군의 특수성을 앞세워 탄핵 정국에서도 제 목소리는 내면서 큰소리치던 모습과는 영 딴판이다.
국방부는 임기 3년의 국방연구원(KIDA) 원장 채용을 돌연 중단했다. 지난달 채용을 시작해 10여명이 지원했지만, 접수가 끝나자 별다른 설명 없이 모든 절차를 원점으로 돌렸다. KIDA 원장은 통상 예비역 중장들의 전유물로, 국방부 장관이 사실상 전권을 행사해 임명하는 자리다.
국방부가 채용을 시작하자 차기 정부 출범과 맞물려 군 안팎에서는 원장 채용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대선이 5월 9일 치러지는데 현 한홍전 KIDA 원장의 임기가 불과 6일 후인 5월 15일까지여서, 현 정부에서 후임 원장을 임명하면 차기 정부의 인사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무성했다. 애당초 무리한 채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가 독불장군마냥 원장을 공모했다가 은근슬쩍 철회하면서, 언감생심 이 자리를 노렸던 예비역 장군들만 쓴 입맛을 다신 셈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22일 “왜 채용을 갑자기 중단했는지 설명하기 곤란하다”며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국방부는 올해 역점사업으로 강조했던 ‘군 복무자 보상방안’ 발표시기도 당초 4월에서 대선 이후인 최소 5월 말이나 6월 초로 미뤘다. 1999년 군 가산점제 위헌판결 이후 다양한 형태의 군필자 우대방안을 마련해 국회 입법을 시도했지만 모두 좌절되면서, 국방부가 전열을 재정비해 반드시 관철시키려 야심 차게 준비한 대책이다.
국방부는 1월 신년업무보고 직후 브리핑에서 “3월 안에 KIDA 연구용역이 끝나면 4월 중으로 종합대책을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당시 병사 봉급인상, 실제 사용내역을 반영한 보상방안 등 맛보기로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특히 “전역 후 취업난이 가중돼 하루빨리 군복무자의 사기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립 서비스’에 그쳤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KIDA의 연구용역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고 해명할 뿐 더 이상의 추가 설명은 없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국방부의 고민이 엿보인다. 군 복무자 보상방안은 안보이슈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이번 대선에서 청년층 유권자와 부모들의 표심을 흔들 수 있는 폭발력을 갖춘 이슈다. 섣불리 발표할 경우 차기 정부의 재량을 침해한 ‘불경죄’는 물론, 후보들의 대선공약과 상충되는 부분은 자칫 군의 정치개입 논란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을 겨냥한 안보태세면 몰라도 국민들의 실생활과 직결된 이런 중요한 사안을 무슨 배짱으로 대선 전에 발표하겠느냐”며 혀를 찼다.
‘자중모드’로 대선을 지켜보는 건 방위사업청도 마찬가지다. 방사청은 지난해 4월 방산비리 척결을 기치로 방위사업감독관에 현직 부장검사를 기용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방산비리에 대한 국민감정이 여전히 좋지 않은 만큼, 제도 1년을 맞은 올 4월에 맞춰 지난 1년간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문재인ㆍ안철수 양강 후보가 모두 방산비리 척결을 안보분야의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방사청은 자화자찬에 나설 타이밍을 놓쳤다. 기껏 성과라고 부풀렸다가 차기 정부에서 행여 새로운 문제라도 발견된다면 방사청은 집중포화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방위사업감독관제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수세에 몰린 정국의 흐름을 전환하기 위해 도입을 주도했다는 게 군 안팎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군의 다른 관계자는 “박근혜정부의 그림자를 떠올릴 수도 있는 이런 이벤트를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방사청은 4월로 예정된 방위사업감독관제 홍보를 12월로 미뤘다. 사실상 없던 일로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대선이라는 강풍 앞에서 일단 잔뜩 웅크리고 있는 우리 군이 언제쯤 기지개를 켜면서 다시 입을 열지 주목된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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