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도=지지도’ 치환 불가능
체계적 표집 개념 아예 없어
여론조사 한계 보완 용도로
보수층 대세 편승 차단하고
양강 흔들려는 ‘서동요’ 전략
“이미 3강 체제에 들어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18일 부산 유세에서 한 장담이다. 한국당 자체 여론조사 결과가 근거였다. 이날 그는 페이스북에 “여론조사와는 달리 밑바닥 민심은 그렇지(나쁘지) 않다. (영남에서 발원한) 동남풍이 불기 시작했다”고 썼다. 기존 양강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자기가 따라잡았단 것이다.
홍 후보는 21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서도 ‘선거자금을 전액 보전 받으려면 득표율이 15%를 넘어야 하는데 가능하리라 보냐’는 질문에 “이미 훨씬 넘어섰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날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홍 후보 지지율(9%)은 양강인 문 후보(41%)와 안 후보(30%)에 한참 모자랐는데 “자체 조사는 판이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자체 조사로 슬쩍 갈아탔지만 애초 홍 후보가 ‘3강론’의 근거로 내세웠던 것은 ‘빅데이터’였다. 그는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 대선에서 정확성이 증명된 빅데이터 (분석) 기법을 사용한 오늘 매경의 빅데이터 지수는 문재인 29.48, 안철수 25.32, 홍준표 21.12”라며 “이미 3강 구도”라고 호언했다. 빅데이터는 디지털 환경에서 생성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가리킨다.
그의 여론조사 불신은 박근혜 정권의 실정과 실각으로 대선 운동장이 기울어지는 바람에 모든 제도권 언론이나 조사업체들이 진보 야권에 줄을 대려 한다는 의심과 피해의식에서다. 그는 “종편과 보수언론까지 돌아서 기댈 곳은 밑바닥 민심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뿐”(16일 페이스북)이라며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페이스북에 매일 꼬박꼬박 글 여러 개를 올린다.
물론 여론조사에 한계가 없지 않다. 아무리 기법이 발달해도 생계 꾸리기에 바쁜 생활인과 자기 의견과 다른 대세에 위축된 소수파의 침묵과 거짓 응답을 피할 수 없는 데다 조사 주체의 의도 개입 가능성 역시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 특히 보수 정권의 처참한 최후 탓에, 지지 소신을 차마 못 밝히는 ‘샤이(창피한) 보수’ 유권자가 많다는 게 홍 후보 판단이다.
이에 숨은 민심을 알아내기 위한 대안 수단으로 ‘빅데이터 분석’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 국내ㆍ외 여론조사 업체들이 한국 총선과 영국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미국 대선 등의 예측에 줄줄이 실패했던 작년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맞힌 건, 포털, SNS, 모바일 검색량을 활용한 빅데이터 기반 서비스 ‘구글 트렌드’였다.
빅데이터 분석의 가장 큰 장점은 설문으로 알아채기 힘든 유권자의 속내를 왜곡 없이 예측에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빅데이터 분석업체인 아르스프락시아 김도훈 대표는 “인터넷이나 SNS상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때는 아무래도 자신의 지지 성향이나 이유를 비교적 솔직히 드러내게 마련”이라며 “기민한 여론 변동 포착에도 빅데이터가 유용하다”고 말했다.
다만 여론조사 대체재론 부적절하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호불호와 상관없는 검색ㆍ조회ㆍ언급량으로 계산된 관심도를 지지도로 치환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검색 빅데이터와 투표 선택의 관계는 규명된 바 없다”고 했다. 대표성도 떨어진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빅데이터엔 체계적 표집 개념 자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홍 후보의 3강론을 밑받침했던 빅데이터 지수는 13일 SBSㆍ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첫 대선 후보 초청 TV토론 직후 일시적 관심 고조의 결과에 불과했다. 매일경제 레이더P 의뢰로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각 대선 후보의 화제성 점유율(인터넷상 관심도)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홍 후보 점유율은 토론 직후 반짝 상승했다가 이후 10%대로 다시 추락했다.
이로 미뤄볼 때 당초 홍 후보의 3강 구도 주장은 표류하는 보수 표심을 결속ㆍ단속하려는 의도였을 공산이 크다. 3강 구도로 재편하기 위한 ‘틀짜기’ 성격이 강하다. ‘밴드왜건’(승자 편승) 현상을 막아 당선 가능성을 키워 보려는 이른바 ‘서동요’ 전략이었던 셈이다. 서동요는 백제 무왕이 신라의 선화공주를 왕비로 삼으려고 퍼뜨린 향가로 일종의 ‘가짜 뉴스’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여론조사 관련 상세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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