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360˚]‘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자란 ‘스타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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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360˚]‘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자란 ‘스타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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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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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발표될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버전의 메인 이미지. 블리자드 제공

직장인에게 가장 피곤하다는 수요일이었지만 지난 19일 황배틀크루저(30ㆍ가명)씨의 마음은 일찍부터 설렜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인터넷 게임으로 즐겨왔던 ‘스타크래프트1’의 새로운 업데이트프로그램(패치) ‘앤솔로지’가 이날 오전 무료로 공개됐기 때문이다. 무려 8년 만에 진행된 업데이트 소식에 며칠 전부터 기다렸던 황씨는 그날 저녁 퇴근하자마자 바로 새 패치를 깔고 게임을 시작했다.

이날 ‘칼퇴근’을 기다린 건 황씨만이 아니다. 유년시절 스타크래프트를 즐겼던 20대 후반~30대 후반 ‘스타크래프트 세대’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검색엔진 구글의 ‘스타크래프트’ 및 관련 단어 검색량은 퇴근 후인 8시에 정점을 찍었다. 평소에는 거의 검색되지 않았던 단어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스타 세대의 단체 카카오톡방 역시, 낮부터 ‘정팅(정례미팅)뜨자’, ‘오늘 밤 새는 거 아냐’ 등 게임 얘기로 뜨거웠다.

(기자주: 인터뷰한 사람들의 가명은 게임 속 ‘최애(최고애정)’ 유닛(캐릭터)으로 대신했습니다.)

스타크래프트1의 새 업데이트버전이 무료 공개된 지난 19일 오후 8시 관련검색어(스타크래프트, 스타 앤솔로지, 스타 1.18패치)의 구글검색량은 급격하게 증가(왼쪽)한 가운데 스타크래프트 세대들은 이날 단체 카카오톡방(오른쪽)에서 옛 친구들과 함께 게임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구글트렌드 , 독자 제공

사실, 이번에 공개된 엔솔로지의 신선도는 떨어진다. 19년 전 선보였던 ‘스타크래프트1’의 부분 보완판이란 점에서다. 대부분의 게임 이용자들의 개인 컴퓨터엔 이미 스타가 깔려있거나 언제든지 PC방에서 게임 이용이 가능한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스타 세대들은 이번 무료 공개에 ‘19년만에 팬 서비스를 받는 느낌’이라며 기뻐하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스타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민속놀이’ 스타의 시작

지난 1998년 3월 미국에서 선보인 ‘스타크래프트’ 게임은 그 해 4월 한국땅에 상륙했다. 게임 배경은 먼 미래의 우주로, 지구에서 추방당한 범죄자 집단 ‘테란’과 집단의식을 가진 절지동물 ‘저그’, 고차원의 문명을 가진 외계 종족 ‘프로토스’ 사이의 전쟁이 줄거리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출시 1년 만에 400만장 이상 판매된 이 게임은 같은 기간 동안 국내에서만 15만장이 팔렸다. 하지만 실제 사용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강하지 않던 당시, 국내 불법 복제판은 난무했기 때문이다. 인기는 지속됐다. 지난 2010년 기준, 이 게임의 국내 판매량은 전세계 누적 판매량의 절반인 450만장에 달했다. 당대 대한민국 청소년 중 안 해본 사람이 드물어 스타가 ‘민속놀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길 정도였다.

당시 스타세대 청소년들의 삶은 집-PC방의 반복이었다. 매일 PC방 출석 도장을 찍는 것은 기본이었고, 밤샘 게임도 흔했다. 이캐리어(34ㆍ가명)씨는 고교 시절 1주일에 적어도 2~3일은 기숙사 담장을 넘어 PC방을 찾았다고 했다. 밤 12시에 끝나는 야간자율학습 탓에 게임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몰래 탈출하다 선생님에게 걸린 것도 여러 번이지만 이씨와 친구들의 야반도주는 계속됐다. 이씨는 “당시 용돈이 더 많았다면 PC방을 더 자주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9~2000년대 초반 출시된 스타크래프트 공략집은 스타 세대 학생들의 필독서가 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게임을 통한 성취감도 스타 세대를 이끌었다. 박시즈(27ㆍ가명)씨는 “남학교에서는 스타실력과 축구실력이 반에서의 서열을 결정했기 때문에 게임을 잘하고 싶어서 수업시간에도 스타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이씨 역시 “동네 PC방대회에서 3등을 했는데 그때부터 친구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져서 게임에 더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비단 남자들만의 재미는 아니었다. 정닥템(29ㆍ가명)씨는 “게임으로 남자아이들을 이기는 재미가 쏠쏠해서 더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언어와 문화도 스타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어른들이 볼 때 도통 그 연원을 알 수 없는 기이한 신조어인 ‘GG친다(게임을 끝낸다ㆍ포기한다)’ ‘버로우탄다(저그족의 잠복기능ㆍ약점 잡히기 전에 숨어버린다)’등도 여기서 나왔다. 학생들은 게임 속 유닛이나 유명 게이머들의 이름으로 서로의 별명을 붙였다. 게임 속 세계관을 반영한 팬소설을 창작하기도 했다.

급격한 인기만큼 기성세대의 우려도 컸다. 스타는 첫 발매 당시 문화관광부로부터 연소자 사용 불가 판정을 받았다. 폭력적인 장면이 많아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때문에 1999년까지도 경찰은 PC방을 단속했고, 게임을 제공한 PC방 업주가 형사 입건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이후 업주들의 행정소송으로 스타는 재판정을 받았지만,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게임만 하는 자녀를 보는 많은 학부모들의 속은 타들어갔다.

프로게이머, 새로운 우상이 되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사실 스타세대들은 공부를 열심히 했다. 단지 ‘스타크래프트’만 공부했을 뿐이다.

게임을 잘하기 위한 스타세대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유명 게이머들이 펴낸 ‘스타크래프트 공략집’을 보는 건 기본이었다. 박씨는 “프로게이머 임요환과 이기석의 공략집을 펴놓고 수업시간에 연습장에 전략을 그리며 외웠다”고 한다. 황씨는 “게임을 잘하던 사람들에게 과외를 받으면서 기본기를 외우고 약 300판의 대전을 치른 뒤 그걸 일일이 복기해 노트에 적었다”고 말했다. 손이 빨라야 게임을 더 잘하기 때문에 특수 제작된 클릭 연습프로그램으로 손가락을 단련하기도 했다.

스타세대는 그러나 이런 노력이 ‘잉여’가 아님을 증명한 세대이기도 하다.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프로게이머’란 직업까지 새로 만들어냈다. ‘게임은 해로운 것’이란 고정관념이 바뀌기 계기도 마련됐다. 우리나라 1호 프로게이머인 신주영씨는 데뷔한 지 1년도 안 되서 세계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했고, ‘스타는 안해봤어도 임요환은 들어봤다’고 할 정도로 유명했던 임요환은 2002년 프로게이머 최초로 동양제과와 억대연봉(1억 6,000만원) 계약을 맺었다. 한때 ‘쌈장’이라는 아이디로 유명하던 이기석은 프로게이머로선 처음으로 TV광고까지 찍었다.

차세대 ‘임요환’을 꿈꾸는 청소년들은 ‘길드(게임단체)’를 구성해 연습게임과 더불어 프로게이머 선발전 대비도 했다. 워낙 게이머 꿈나무들이 쏟아지다 보니 ‘게이머 특별전형’을 신설하는 대학들도 생겼다.

1999년 ‘쌈장’ 이기석의 TV광고. 유튜브영상

대한민국 PC방ㆍe스포츠는 스타가 다 키웠지

스타는 수많은 ‘사장님’도 배출했다. 스타의 흥행으로 우리나라 PC방의 개수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1995년쯤 처음 등장한 PC방은 1998년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기 전까지는 3,000여개에 불과했지만 2000년에는 전국에 2만 1,460개가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스타가 낳은 최대 산업은 ‘e스포츠’다. 세계적인 실력을 가진 프로게이머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프로리그와 게임전을 중계할 전문 방송들이 생겼다. 대표적인 것은 팀단위 대회인 온게임넷의 ‘스타 프로리그’, 개인리그전인 MBC게임의 MSL등이다. 게임을 직접 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력 있는 게이머들의 대전을 보는 것도 스타세대의 주요한 일과였다.

프로게임을 직접 관람하는 것도 중요한 일과였다. 박벌쳐(33ㆍ가명)씨는 스타 팬들이면 다들 기억하는 ‘광안리대첩’에 직접 갔었다. 2004년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리던 프로리그 경기 당시 10만명의 관중이 몰린 날을 말한다. 같은 날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 관중(1만5,000명)에 비하면 압도적인 관중이다. 박씨는 “예전에 관람했던 게임의 참가선수와 대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며 “직접 가서 볼 때 팬들의 함성을 들으면 더 신이 났다”고 말했다.

2005년 7월 30일 밤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국내 최대의 e-스포츠 행사인 스카이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결승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e-스포츠협회 제공

같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스타 세대들은 스타크래프트가 ‘같이할 수 있는 게임’이라서 좋다고 말한다. 스타가 발매되기 이전 게임들은 컴퓨터와 나와의 대결이었지만, 스타는 ‘배틀넷’이라는 게임전용 통신망을 이용해 반 친구는 물론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한 첫 게임이라는 것이다. 황씨는 “스타 이전의 게임이 혼자하는 ‘독서’와 같았지만, 스타 이후의 게임은 ‘스포츠’가 됐다”고 말했다.

처음 만난 사람도 친해지게 만드는 스타의 마법은 여전하다. 스타 세대들은 대학에 입학하는 등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면 함께 게임을 해서 친해진다고 한다. “다른 게임은 몰라도 스타를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은 없기 때문”이라는 게 박시즈씨의 설명이다.

경쟁으로 지쳐있던 청소년들의 마음을 달랜 것도 스타였다. 이씨는 “일반 스포츠 스타는 아무리 본인 실력이 좋아도 집안배경과 인맥이 따라줘야 성공하지만 스타라는 온라인 공간의 경우 공부를 못하고 배경이 없어도 본인이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었다”며 “불평등한 현실 속 경쟁에 지쳐있었기 때문에 게임 속 세계가 더 좋았던 것 같다”고 말한다.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기존 그래픽을 초고화질(UHD)로 고도화시킨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출시를 발표했다. 19년간 스타에 충성을 바친 한국 팬들에게 업그레이드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것이다(영상). 게임팬들은 2010년 이후 한동안 잠잠해진 프로게임 리그가 부활하리라는 기대도 하고 있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스타세대 이씨는 새로운 버전의 스타를 10대, 20대도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젊은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지고 싶지만 나이가 들고 자연스레 공통분모가 사라져서 어느덧 ‘꼰대’(늙은이)로 변해가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게임을 같이 하다 보면 그들과의 세대차이도 점차 좁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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