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ㆍ미사일 실험이 촉발하고, “대북 선제공격도 불사할 수 있다”는 미국 새 정권의 태도가 증폭시킨, 한반도 위기설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특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거의 기정사실화한 듯한 일본의 과도한 반응이다.
일본 정부는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해 일본인을 피란시키기 위한 본격적 대책 마련을 시작했다고 일본 주요 신문이 21일 보도했다. 미군이 북한을 선제 공격할 경우 한국 정부 지정 대피소로 일본인들이 가도록 해 최대 3일까지 안전을 도모한 뒤 일본으로 귀국시킬 방편을 구한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에서는 최근 하루 이틀이 멀다 하고 이런 기사들이 실린다. 문제는 일본 언론의 호들갑이 아니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 관계자들 역시 이런 ‘한반도 전쟁 위기설’에 편승하고 있다. 아베는 지난 12일 한반도 유사시에 “북한 납치 일본인 피해자를 구하도록 미국 측의 협력을 요청 중”이라고 말한 데 이어 다음날 “북한이 사린 가스를 미사일에 장착해 발사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17일에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 정부의 대응에 대해 “(한반도에서 유입된) 피란민을 보호하는 데 있어 입국 절차와 수용시설 설치, 지속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사람인지 조사하는 일련의 대응을 상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 지도자가 주변국의 유사 사태에 대비해 자국민 피란 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만일의 경우를 전제했기 때문에 유사시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방침을 가진다는 점에서는 곧바로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이런 대책을 공개적으로 밝힐 만한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느냐이다. 칼빈슨 항모 논란처럼 한반도 위기설은 사실 자체가 불분명하고, 외교 안보 전략은 실체와 별개로 상대를 압박하려는 측면이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모호하다.
위기가 위기를 부르고, 그것이 다시 불안을 조장하는 부정적 상승 효과는 피해 마땅하다.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경우에 대비하는 것은 필요하다 치더라도 그런 상황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위기를 가중시키거나 불필요한 불안과 혼란을 조장할 뿐이다. 이웃나라 국민의 생사가 달린 문제를 두고 마구잡이로 언급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부나 정치지도자의 자세와 거리가 멀다.
그럴 만한 관심이나 여력이 있다면 오히려 현재 한반도 상황을 평화적으로 풀어가는 데 쏟는 게 훨씬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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