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초등 학교에서는 하루에 약 10페이지 정도의 그림책을 한 권씩 읽게 한다. 그것이 초등학교 1학년 숙제의 거의 전부에 해당한다. 이 숙제의 숨은 의도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각 단어의 철자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를 통해 가능하면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철자와 소리 사이의 여러 가지 규칙을 내재화시키는 것이 주 목적이다.
내가 영어를 처음 배울 때, 단어를 배우는 방법은, 무작정 암기하는 것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도 그랬고, 대학원에서 유학 영어를 준비할 때도 그러했다. 수도 없이 많은 단어를 중얼중얼 말하며, 백 번씩 쓰며 익혔다. 심지어 영미 화자들도 모르는 단어의 뜻을 척척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익힌 단어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모두 금방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반면, 필자의 경우에 대학시절 즐겨 읽던 ‘펭귄 고전 문고(Penguin Classics)’ 소설에서 읽은 단어는 잘 잊어 버리지 않았다. 게으르고 귀찮기도 하여 사전 없이 한 두 권씩 읽었는데, 문맥에서 단어의 뜻을 유추하는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얻은 단어들은 쉽게 내 단어가 되었다.
최근에 나는 마이클 토마스(Michael Thomas)라는 사람의 언어 교수법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한국어를 이 방법으로 가르치는 간단한 책을 영국 출판사 ‘호더 앤 스타우튼운(Hodder & Stoughton)에서 내었다. 이 교수법은 영국에서 지난 20여 년 동안 매우 인기가 있었는데, 이 교수법의 요지는 가장 편안한 상황에서, 전혀 외우고 기억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을 때 언어 습득이 가장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용이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고 부담이 없을 때 신기하게도 우리 뇌가 그 언어를 맞을 준비를 하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언어를 구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간 언어학, 심리학을 비롯하여 인문학 전반에서 인간의 언어 능력이 배우는 것이냐(nurture), 타고 나는 것이냐(nature)에 대한 논의가 매우 활발히 진행되었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정답은 아마 둘 다가 아닐까? 타고나는 것이 있다면, 배우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아이들의 숨겨진 능력이 빛을 발하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치 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해서 누군가 엔진에 시동을 걸어야 하듯이, 누군가 이 능력에 불을 지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우리 속담처럼, 이러한 언어 능력을 타고나더라도, 이 능력에 불을 지펴 주지 않으면, 이 언어 능력은 그냥 소실되고 만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에 보게 된 어느 학교의 모토가 생각나서 소개한다.
“아이의 마음은 어른이 무엇인가를 채워 넣는 그릇이 아닙니다. 대신, 어른들은 아이들의 마음속 능력과 열정에 불을 지펴줘야 합니다.”(A child’s mind is not a vessel to be filled but a fire to be kindled, Henry Stuart Townend)
어릴 적에 어머니는 내가 키가 작은 이유가 우유를 덜 마셨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또 키가 작은 자신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언어를 배우고, 언어 능력의 키가 성장하는 데도 두 가지 요소가 다 필요하다. 타고나는 것이 있고, 가르쳐 줘야 하는 것이 있다. 16세기 영국 사립학교 교장을 지낸 리처드 멀캐스터(Richard Mulcaster, 1531~1611년)는 자연은 아이가 자신이 타고난 성향대로 자라도록 인도하지만, 교육은 그 아이가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능력을 꽃피우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이 바로 우리의 언어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은 케어 옥스퍼드대 한국학ㆍ언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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