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러시아 폭격기가 이틀 연속 미국 해안 상공에 출현해 미 전투기들이 대응 출격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최근 시리아 사태를 둘러싸고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러시아가 무력시위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정확한 배경을 놓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미 폭스뉴스 등에 따르면 러시아 장거리 폭격기 ‘TU-95 베어’ 2대는 이날 저녁 알래스카 해안에서 64.8㎞ 떨어진 지점까지 근접 비행했다. 폭격기들은 해안선에서 12마일(19.3㎞) 거리인 미국 영공을 침범하지는 않았지만, 방공식별구역(370.4㎞) 안에는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앵커리지 공군기지에서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E-3 한 대를 출격시켜 러시아 폭격기들이 자국 기지로 귀환할 때까지 몇 시간을 따라 다녔다.
전날에도 TU-95 베어 2대가 알래스카 남부 코디악섬에서 100마일(160.9㎞) 떨어진 지점에 접근하자 미 F-22 스텔스 전투기 2대와 E-3 통제기가 긴급 발진해 12분 동안 대치했다. 게리 로스 미 국방부 대변인은 “폭격기들을 안전하고 전문적인 방식으로 차단했다”며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무장한 러시아 전투기들이 미 본토 인근에서 근접 비행을 한 것은 2015년 7월 4일 이후 처음이다. 당시에도 TU-95가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 해안 주변에 잇따라 출몰했는데, 독립기념일을 맞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축하 전화를 하는 와중에 군사적 긴장을 불러 논란이 되기도 했다.
미 본토뿐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근접 비행에 따른 충돌 위기는 자주 있었다. 지난해 9월에는 흑해 공해상에서 작전활동을 하던 미 정찰기에 러시아 전투기가 불과 9m 간격을 유지한 채 비행하다 충돌 직전까지 갔고, 그해 1월에도 흑해에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당시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사태 등 국제분쟁 사안을 두고 러시아와 서방 간 갈등이 지속되는 시점에 발생한 사건이어서 러시아 측의 의도적 군사행동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이번 러시아의 근접 비행 역시 도발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러시아가 지원하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화학무기 공격에 미국이 미사일 발사로 보복하면서 양국의 긴장 수위는 한층 높아졌다”며 러시아가 미국을 자극하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러시아는 지난주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에도 미국의 우방인 일본 동해안 인근에 폭격기를 출동시켜 무력을 과시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