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ㆍ안철수 타깃 청문회로 둔갑
3약 후보들은 청문위원 같아”
시간총량제 탓 질문만 쏟아내
답변 안 듣고 건너뛰기 일쑤
사회자는 ‘인간 타이머’ 역할만
토론 주제 구체화 적절히 개입을
준비된 원고를 줄줄 읊는 토론에서 탈피해보자며 대선 사상 처음 시도된 스탠딩 토론이 후보들간의 맥락 없는 난타전으로 끝나면서 개선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대로는 정책 능력 검증은 고사하고 소모적인 네거티브 공방으로 흘러 전파만 낭비할 뿐이라는 지적이다.
공격만 난무했던 문재인 청문회
전문가들은 이번 KBS 토론이 애당초 스탠딩 토론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스탠딩 토론은 양자 혹은 삼자 대결일 때야만 서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는 과정 속에서 후보의 내공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러나 후보자가 5명이나 되다 보니 모든 타깃이 1등을 달리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집중되면서 토론회는 사실상 문재인 청문회로 둔갑했다는 평가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20일 “스탠딩 토론의 장점이 후보들의 민 낯을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이번 토론은 오로지 한 사람만 검증대에 섰다는 게 문제다”며 “문재인, 더 나아가 안철수 청문회였고, 유승민 심상정은 청문위원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문 후보를 향한 이념의 십자포화는 보수ㆍ진보 후보를 가리지 않았다. 때문에 안보 분야에서 북핵 해법 등 본질은 부각되지 않고 때아닌 주적과 대북송금, 국가보안법으로 토론이 점철됐다. ‘3약’ 후보들의 포구는 간간이 지지율 2위인 안철수 후보를 향하기도 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스탠딩의 형식이 아니라 5자 토론 구조를 문제 삼았다. 진 교수는 “1등, 2등 후보만 별도로 하거나, 아니면 맞붙고 싶은 사람들끼리 15분씩 붙여서 맞물리게 하는 방안은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오미영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는 “중앙선관위 법정토론이 아닌 경우, 굳이 5명을 다 하는 게 옳은 것인가 하는 부분은 의문이다.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분야별 교통정리도 필요
시간총량제에 대한 지적도 쏟아졌다. 후보자별로 정해진 시간은 동일한 데 질문과 답변 시간을 모두 포함시키다 보니, 저마다 각자 하고 싶은 말과 질문만 쏟아내고 상대방의 답변은 듣지도 않고 건너 뛰는 경우가 허다했다. 특히 집중 타깃이 된 문 후보의 경우, 답변하는데 시간을 다 쓰는 바람에 질문을 거의 할 수가 없었다. 이러다 보니 질문을 거의 받지 않아 시간이 남은 홍준표, 유승민 후보 단둘이 1부 외교안보 토론을 마무리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아예 시간총량제를 폐지하거나, 질문과 답변을 나눠 총량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연경 단국대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시간을 쭉 풀어놓는 방식이 너무 길었다”며 “공정성과 균형 면에서 조율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중계 화면에 후보자들의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제대로 나타나지 않다 보니 시청자들 입장에선 깜깜이 진행에 대한 혼선이 더욱 가중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좀 더 구체적으로 주제를 나누고, 사실상 인간 타이머 역할에만 그친 사회자가 논점을 정리하며 개입하는 룰은 불가피하다고 봤다. 이상철 성균관대 교양학부 교수는 “토론 주제와 관련해 분야별 섹션을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고, 사회자 역시 후보자들의 질문과 답변이 반복되지 않도록 적절히 개입해야 한다”며 “그야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無)형식의 자유토론이 아니라 소주제별 자유토론만 설계해 진행해도 스탠딩토론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정승임기자 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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