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스타들 중 부모로부터 운동 DNA를 물려받은 이들이 꽤 많다. 차범근-차두리(축구), 허재-허웅(농구)처럼 같은 길을 걷는 부자(父子)도 있고, 한장석(배구)-한승혁(야구), 조창수(야구)-조윤지(골프)처럼 다른 종목도 있다. 그러나 야구는 청출어람의 케이스가 드물다. 수많은 아들들이 아버지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아버지의 우월한 DNA를 그대로 물려받지 못했다. 인천 야구의 상징인 김경기(SPOTV 해설위원)-김진영(전 삼미 감독)이 그나마 동반 성공한 야구 부자로 꼽힌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켄 그리피 부자가 전설로 남아 있다. 아들인 켄 그리피 주니어는 통산2,671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8푼4리, 2,781안타, 630홈런, 1,836타점을 남겼다. 아버지 켄 그리피 시니어 역시 빅리그에서 통산 2,143안타를 때린 당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였다. 1990년 9월15일에 둘은 전무후무할 부자 ‘백투백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부자 선수는 탄생하지 않았지만 박철우-박세혁(이상 두산)이 최초의 한 팀 코치-선수 부자로 기록됐고, 이종범(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정후(넥센)는 최초의 1차 지명 부자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 18일과 19일 인천 SK-넥센전을 중계한 이종범 해설위원은 이정후의 타석 때마다 유독 말을 아끼고 긴장하는 표정이 중계 화면에 잡혀 웃음을 자아냈다. 이정후는 19일까지 16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3푼3리(63타수 21안타)에 2홈런, 9타점으로 활약하며 ‘2세 신드롬’의 맨 앞에 서 있다. 이종범 해설위원은 수식어가 필요 없는 야구천재였다. 그는 “아들이 다른 운동을 하길 바랐다. 야구를 하면 끊임없이 나와 비교될 텐데 그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고 야구 잘한 아버지의 부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정후의 초반 돌풍은 김동엽(SK)에게로 이어진 분위기다. 김동엽은 4번타자 정의윤이 시즌 초 부진한 틈을 타 새 4번타자로 나서 최근 4경기 연속 홈런을 쏘아 올렸다. 홈런 전체 1위인 팀 선배 최정(6개)에 이어 벌써 5개의 아치를 그렸다.
김동엽은 한화 포수였던 김상국의 아들이며 정의윤도 정인교 전 롯데 코치의 아들이다. 천안북일고 시절 일찌감치 스카우터들의 레이더에 포착됐던 김동엽은 2009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컵스에 입단했지만 어깨 부상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접었다. 귀국 뒤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쳤고, 2015년 8월 트라이아웃을 통해 SK 유니폼을 입었다. 어깨 수술로 인한 긴 공백으로 타 팀은 외면했지만 SK는 타고난 장사로 평가 받았던 김동엽의 못다 핀 잠재력이 터질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데뷔 5시즌째를 맞는 박세혁도 지난 15일 NC전에서 데뷔 첫 멀티홈런(1경기 2홈런 이상)을 터뜨리며 양의지라는 큰 산을 넘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1군에서 함께 했던 아버지 박철우 타격코치가 최근 퓨처스리그로 보직을 옮긴 것도 박세혁에겐 부담을 덜어줄 것으로 보인다. 두산의 퓨처스리그엔 또 한 명의 2세 유망주가 있다. 북부리그 타율 2위(0.474)에 올라 있는 이성곤은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의 아들이다.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두터운 야수층을 자랑하는 두산이 아니었으면 1군에서 활약할 기량이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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