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정: 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ㆍ조행복 옮김
열린책들 발행ㆍ168쪽ㆍ1만2,000원
신자유주의에 대한 99%의 피해의식이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를 탄생시켰다면,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 대한 전 세계인들의 공포는 이 책을 탄생시켰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며칠 후, 언론과 지식인들이 ‘왜 트럼프가 당선됐나’를 따지고 있을 때 예일대 사학과교수 티머시 스나이더는 트럼프 정부를 맞아 ‘시민이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썼고, 페이스북에 ‘20세기 스무 가지 교훈’이란 제목으로 이를 게재했다. 며칠 만에 ‘좋아요’가 1만개가 달렸고, 러시아 해커가 이를 그대로 옮겨 전자책까지 출간하면서 티머시는 점차 화제의 인물이 됐다. 올해 2월 정식 출간된 책은 전자상거래사이트 아마존(3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3위)와 워싱턴포스트(1위) 등의 집계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저자는 동유럽사와 홀로코스트를 전공한 이력을 십분 발휘해 “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질 수 있고, 도덕이 땅에 떨어질 수 있”었던 20세기 유럽사를 돌아보며 스무 가지 조언을 건넨다. 첫째 경고는 ‘미리 복종하지 마라’는 것이다. 저자는 나치와 공산당 집권을 가져온 것은 각각 1932년 독일 선거, 1946년 체코슬로바키아 선거이지만, 보다 결정적인 단계는 그 직후 ‘예측복종’이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두 경우 모두 자발적으로 새로운 지도자에 봉사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났기 때문에” “완전한 체제 변화를 향해 신속히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정권 스스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나치 친위대는 상부의 명령 없이 ‘솔선’해 대량 학살 방법을 고안했다.
독일 나치 정부가 수립된 1년 후 1933년 독일 한 유대인 신문은 “그들은 그 같은 일(나치의 유대인 박해)을 벌일 수 없다”는 사설을 싣는다. 저자는 “제도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통치자들이 그 제도를 바꾸거나 파괴할 수 없으리라 추정하는 건 치명적 실수”라고 지적하며 두 번째 경고를 건넨다. ‘제도를 보호하라. 제도는 스스로 보호하지 못하며, 그 중 무엇이든 처음부터 보호받지 못하면, 하나씩 차례로 무너져 내린다.’
히틀러 개인 변호사였다가 후일 점령지 폴란드의 총독이 된 한스 프랑크를 사례로 들며 ‘직업 윤리를 명심하라’고도 조언한다. “법률가 없이 법치 국가를 파괴하거나, 판사 없이 보여주기 식 재판을 진행하는 건 어렵다. 권위주의자들에게는 복종하는 공무원이 필요하고, 강제 수용소 소장들에게는 값싼 노동력에 관심 있는 사업가가 필요하다.”
‘어법에 공을 들여라’,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침착하라’, ‘최대한 용기를 내라’ 등 트럼트 시대를 견디는 묘안들은 작금의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다가온다. 4년 전 이 책을 만났다면 우리는 박근혜 시대의 농단을 피할 수 있었을까.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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