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벌써 43건이나 발생
소ㆍ닭 축사 합계 피해보다 많아
보온ㆍ감염 차단 위해 폐쇄형
먼지 쌓인 전기시설이 주요 원인
방귀ㆍ분뇨까지 겹쳐 기름에 불
충남 서산에서 돼지 1,200마리를 기르는 송모(56)씨는 요즘 밤참을 설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돈사(돼지우리) 화재 소식에 10년 전 돼지우리가 모두 불에 타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던 악몽이 떠오른다. 32년째 돼지를 키우는 그는 “한번 불이 나면 수억 원의 재산피해는 기본이라 틈 날 때마다 우리를 살핀다”고 했다. 인근에서 돼지를 키우는 김모(48)씨도 “화마(火魔)는 구제역보다 무서운 존재”라고 했다. 구제역은 그나마 시설은 남겨놓기 때문이란다.
화마가 전국의 돼지농가를 덮치고 있다. 농장주들은 좌불안석이다. 최근 열흘 새 경기(동두천) 충북(진천) 충남(논산) 경북(군위) 경남(함안) 전남(화순) 각지의 돼지우리에서 큰 불이 나 돼지 약 8,000마리가 불에 탔다. 특히 화재 3건이 잇따라 발생한 11일엔 돼지 5,000마리가 변을 당했다. 같은 기간 우사(牛舍) 화재는 0건, 계사(鷄舍) 화재는 1건뿐이었다.
19일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올 들어 접수된 돼지우리 화재는 43건으로 소(27건)와 닭(15건)축사 화재 건수를 합한 수치보다 많다. 재산피해 역시 돼지우리가 17억4,500만원으로 소(1억1,900만원) 닭(6억9,600만원)을 압도한다.
왜 하필 돼지우리만 유독 화재에 취약한 걸까. 전문가들은 돼지우리에 쌓인 먼지로 인한 누전을 주요 화재원인으로 꼽았다. 폐쇄적인 우리 환경과 미흡한 전기시설 관리 습관이 맞물려 의도치 않은 화재를 불러왔다는 얘기로, 전기시설 점검과 이물질 제거 등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해 177건의 돼지우리 화재 중 절반이 넘는 93건이 전기시설에서 비롯됐다. 김효철 농촌진흥청 연구사는 “환기가 어려운 겨울 동안 축사 내 전기시설에 계속 먼지가 쌓이고, 이것이 전기시설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불꽃과 맞닿아 불이 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우리 주변에 널린 사료를 먹기 위해 몰린 쥐나 새들이 전기시설을 훼손시키기도 한다.
우리의 특징도 좌우한다. 외부 공기가 노출되고 환기도 되는 개방형 우사와 달리, 돼지우리는 보온과 바이러스감염 차단 목적에 따라 폐쇄형으로 지어져 화재 위험도 높고 일단 불이 나면 피해 규모도 크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계사는 소규모농장의 경우 대개 개폐식이라 화재 대응이 용이하고, 대규모 기업형은 밀집사육이지만 관리가 상대적으로 잘된다.
특히 돼지가 뿜어대는 방귀와 분뇨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형국이다. 분뇨 등은 사료, 세척제 등과 꽉 막힌 돼지우리에서 뒤섞이면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메탄가스를 발생시킨다. 자연발화의 원인은 아니지만 작은 불꽃이라도 튀면 치명적이다. 최근 충북 증평소방서가 돼지우리 화재 연소실험을 한 결과, 돼지 분뇨와 사료 등으로 뒤섞은 혼합물(슬러리)에 메탄가스와 비슷한 가스를 주입한 뒤 불꽃을 점화하자 1~2초 만에 우리 전체로 불이 번졌고, 10분 만에 잿더미가 됐다.
농협 등으로부터 거금을 빌려 축사를 짓거나 돼지를 들이는 대부분 축산농가 입장에서 축사까지 타버리면 그만큼 상환능력이 떨어지고 추가로 빚을 내기도 어려워 회생이 더 더딜 수밖에 없다. 소방서 관계자는 “슬러리를 자주 외부로 배출하고 수시로 전기시설에 쌓인 먼지를 제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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