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용의자 인도 요구에
北 계속 침묵하자 다시 압박 나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으로 북한과 단교 직전까지 갔던 말레이시아가 불법체류 북한인 296명을 추방했다. 김정남을 암살하고 북한으로 도주한 용의자 4명을 체포해 자국에 넘기라는 거듭된 요구에도 북한이 침묵으로 일관하자 말레이가 가용 가능한 수단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19일 현지 일간 더스타에 따르면 말레이 이민국은 이달 초 북한인 노동자 중 체류 기간이 끝난 117명에게 11일까지 자진 신고를 거쳐 떠나라고 명령했다. 이민국은 전날 성명을 통해 117명 중 113명이 자수했고, 취업 비자 없이 말레이에 체류했던 183명도 추가적으로 자진 신고해 추방 조치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모두 말레이에서 가장 큰 사라왁주에 거주했으며 상당수가 석탄 광산에서 외화벌이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까지 사라왁주 광산에서 일한 북한 노동자는 300명 정도로 추산됐다. 앞서 말레이는 김정남 암살 배후를 북한 정부로 보고 북측과 무비자협정을 폐기했다.
말레이는 북한과 관계 정상화 선언을 했으나 북한에 자국 대사를 다시 파견할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역시 대북 압박 목적으로 보인다. 국영 베르나마통신 등에 따르면 아흐마드 자히드 하미디 말레이시아 부총리는 전날 기자들로부터 관련 질문을 받고 “이 문제를 총리, 외무부와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지난 2일 “우리는 그 쪽(북한) 우리 대사관을 폐쇄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던 것과 온도차가 있는 발언이다.
말레이는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북한과 관계가 악화하자 2월 22일 모하맛 니잔 북한 주재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한 데 이어, 지난달 30일 북한에 억류돼 있던 말레이 외교관과 가족들을 북한 국적 용의자들과 교환하는 방법으로 전원 귀환시켰다. 이후 평양의 말레이 대사관은 비어 있다. 말레이 내에서는 북한 정권이 외교적으로 불리해지면 언제든 또 다시 자국민을 인질로 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외교관을 보내는 것은 “잠재적 인질만 넘겨주는 꼴”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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