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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CJ E&M, 청춘 위로할 자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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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CJ E&M, 청춘 위로할 자격 없다

입력
2017.04.1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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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니온 등 2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가 18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책위원회 제공
청년유니온 등 2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가 18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책위원회 제공

“적금은 내년부터 들면 되죠.”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PD라는 직업을 원했던 이한빛(사망 당시 27세) PD는 비정규직이던 CJ E&M 인턴 시절 첫 월급 180만원 중 60만원을 세월호 416연대와 해고된 KTX 비정규직 승무원에게 기부했다고 한다. 적금을 들라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첫 1년은 기부하고 싶다며 빈곤사회연대 등 다양한 시민단체를 후원했다. 마침내 정규직 조연출이 됐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그가 꿈꾸던 것과 너무 달랐다. 처음으로 제작에 참여한 tvN 드라마 ‘혼술남녀’ 촬영 기간 그가 55일 중 단 이틀만 쉬는 강행군을 한 건 그래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제작 현장의 비정규직 스태프들에게 과도한 노동을 강요해야 하는 죄책감은 너무 버거운 현실이었다. 결국 종방연 이튿날(지난해 10월 26일) 세상을 등졌다.

그의 죽음에 대해 현실은 냉랭했다. 지난 18일 이 PD 사망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대책위의 기자회견 후, 수 차례 시도에도 연락이 닿지 않던 CJ E&M측은 저녁 늦게야 언론에 입장 자료를 배포했다. 사망 후 6개월간 침묵 후 첫 입장 발표였다. 수 백 건의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주요 포털사이트에 ‘혼술남녀‘가 검색어 1위에 오르며 사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였다. 그러나 해당 자료는 CJ E&MㆍtvNㆍ혼술남녀 홈페이지 어디에도 게재되지 않았다. 유가족과 대책위도 기사를 통해서야 CJ의 입장을 접했을 뿐이었다.

내용에서도 진정성은 찾기 힘들었다. CJ E&M 측은 ‘경찰과 공적인 관련 기관 등이 조사에 나선다면’이라는 조건을 단 뒤 ‘수사 결과를 수용하고 개선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대책위 관계자는 “이 PD의 죽음과의 연관성을 언급하는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 동안 CJ E&M 측의 조사 방식은 의뭉스러웠다. 대책위의 공동조사 제안을 번번이 거부했고, 조사 대상은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는 선임 PD 위주였다. 그렇게 내놓은 이들의 결론은 “이 PD가 지각을 하는 등 평소 태도가 불량했다”는 것이었다. 이 PD가 과도한 노동과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비정규직 스태프들의 진술은 CJ E&M의 관심 밖이었다.

지난해 ‘혼술남녀’는 노량진 공시생들과 신입 강사 등 청춘들의 애환을 ‘혼술(혼자 술마시기)’이라는 주제로 풀며 인기를 끌었고 현재는 시즌2 제작에 한창이다. 그러나 정작 ‘혼술남녀’가 위로해야 할, 가장 가까이 있던 한 고달픈 청춘의 호소는 묵살됐다. 그들이 정말 이 땅의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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