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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 논의 저지’ 법원행정처 일부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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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 논의 저지’ 법원행정처 일부 개입

입력
2017.04.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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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회 중복가입 금지 조치 등

행정처가 학술대회 축소 압박

거부한 판사 부당인사는 불인정

“사법부 블랙리스트도 없다” 결론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가 일선 판사들의 사법 개혁 논의를 부당하게 저지하려 했다는 의혹을 조사하고 있는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가 18일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연합뉴스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가 일선 판사들의 사법 개혁 논의를 부당하게 저지하려 했다는 의혹을 조사하고 있는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가 18일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연합뉴스

법원행정처가 일선 판사들의 사법개혁 논의 학술행사를 저지하려 부당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 하지만 행사 축소 지시 이행 거부를 이유로 해당 판사를 인사 조치한 것은 아니며, ‘판사 블랙리스트 파일’도 없다는 결론이 났다.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는 18일 법원 내부 전산망에 이런 내용의 57쪽짜리 조사보고서를 올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행정처 중견 판사인 이규진(55)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법원 내 최대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준비한 학술대회 축소를 위해 여러모로 압박을 가했다. 이 연구회 회장 출신인 이 상임위원은 지난해 12월 연구회가 대법원장 권한 집중, 법관인사제도 등 민감한 사안을 외부(연세대)와 함께 발표한다는 계획을 듣고 한 달 뒤 두 차례 대응문건을 작성해 행정처ㆍ차장이 주재한 회의에 올렸다. 그 대응대책에는 ‘적극 대처 방안으로 연구회 전체 차원의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도 담겼다.

진상조사위는 이와 관련 “실제로 전문연구회 중복가입 금지 조치가 시행됐는데, 이 연구회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점은 법원행정처도 인지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회는 2011년 8월 발족해 판사들이 2, 3순위로 가입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사위는 “보고된 대책문건들 중 일부가 시행된 이상 법원행정처도 책임을 면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상임위원은 대응문건 작성 전후로 연구회 쪽 판사와 자주 만나 “외부와 학술대회를 하면 대법원이 중복가입 문제를 정리할 것이다. 발표를 하지 말거나 수위를 낮춰달라”는 식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해당 규정은 10년 넘게 사실상 방치돼온 터라 일선 판사들 사이에선 ‘사문화된 규정’이었다. 조사위는 “갑자기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실행한 것은 부적절하다”며 “특정 연구회나 학술대회를 견제하려고 부당한 압박을 가한 사법행정권의 남용”이라고 봤다.

그러나 조사위는 학술대회 축소 지시 이행을 거부한 연구회 소속 이탄희 판사를 부당 인사 조치했단 의혹은 인정하지 않았다. 행정처 사정을 알고 실망한 이 판사 본인의 뜻이 완고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앞서 이 상임위원은 학술행사 날짜가 결정되자 곧바로 이 판사에게 전화해 심의관 발령 가능성을 언급하며 학술행사 축소를 부탁했지만, 조사위는 이를 연구회 견제 목적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이 판사 부당 인사 의혹에 휘말려 사표를 낸 임종헌(58) 법원행정처 전 차장이 이 판사에게 직접 지시나 요구를 전달한 정황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조사위는 설명했다.

논란이 된 ‘사법부 블랙리스트’도 없다는 게 조사위 결론이다. 이 판사가 “컴퓨터에 판사들 뒷조사한 파일들이 나올 텐데 놀라지 말고, 좋은 취지에서 한 거니까”라는 이 상임위원의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지만, 이 상임위원과 다른 심의관들의 진술 등을 종합할 때 뒷조사 파일은 없다고 봤다.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한 서면조사도 했지만 개입 정황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26일간 법관 31명이 이번 조사에 임했다. 연구회 관련 대외비 문건과 관련자들 이메일, 카카오톡 메시지 등이 증거로 쓰였지만 행정처가 주는 자료만 받아 조사가 진행돼, 의혹이 다 가시진 않는다는 평가다. 조사위는 “사법제도 논의는 대법원과 법원행정처가 독점해선 안 되고 법관들의 토론과 의견수렴이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권장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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