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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진격'의 넷플릭스, 뒤로 가는 국내 방송

입력
2017.04.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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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서바이벌프로그램 '비스트 마스터: 최강자 서바이벌'에 참가한 한국인 박희용씨가 장애물 정복에 나서고 있다. 넷플릭스 화면 캡처
넷플릭스의 서바이벌프로그램 '비스트 마스터: 최강자 서바이벌'에 참가한 한국인 박희용씨가 장애물 정복에 나서고 있다. 넷플릭스 화면 캡처

2010년 개봉한 영화 ‘하녀’는 기획 단계부터 영화계와 방송계의 주목을 받았다. ‘시청률 연금술사’였던 김수현 작가가 시나리오를 맡아서였다. 김 작가는 ‘바람난 가족’과 ‘그때 그 사람들’의 임상수 감독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여의도 대표 작가와 충무로 유명 감독의 만남이 어떤 조화를 이뤄낼지 호기심을 불러 모았다. 달콤한 결과로 이어지리라 여겨지던 두 사람의 조우는 쓴맛만 남기고 끝났다. 김 작가의 시나리오를 임 감독이 수정한 것을 두고 갈등이 불거졌고, 결국 김 작가가 하차를 선언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작가 위주의 방송계 문화와 감독 중심의 영화계 관행이 충돌하면서 파국을 불렀다고 해석했다. 김 작가와 임 감독의 악연은 영상언어를 토대로 한 방송과 영화가 업계 생리 때문에 국내에선 융합할 수 없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얼마 전 흔하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김은희 작가와 김성훈 감독의 의기투합이었다. 지난해 두 사람은 각각의 행보로 대중의 마음을 훔쳤다. 김 작가는 드라마 '시그널'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고, 김 감독은 영화 '터널'로 700만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그 동안 일해왔던 사람들과 차기 작을 궁리해도 아쉬울 것 없을 두 사람은 내년 방송 예정인 사극 ‘킹덤’으로 만난다. 조선을 배경으로 좀비를 등장시키는 이색 소재다. 8부작이 될 이 드라마는 제작비로 수백억원이 들어갈 예정이다. 김 작가와 김 감독의 협업을 주선한 쪽은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다. 190여 개국에서 가입자가 9,400만 명이나 되는 미국 공룡기업이다. 가입자당 적어도 월 9.9 달러(약 1만1,200원)를 받으니 매달 1조 원 이상을 꼬박꼬박 벌어들이는 회사다. 넷플릭스의 자본력과 거대한 전달망이 국내 방송과 영화의 합작이라는 흔치 않은 사례를 만들었다. 넷플릭스의 공격적 행보는 ‘킹덤’에 그치지 않는다. 만화가 천계영의 인기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을 원작으로 한 동명 드라마도 만들어진다.

넷플릭스의 야심과 스케일은 최근 공개한 다국적 서바이벌프로그램 ‘비스트마스터: 최강자 서바이벌’에 잘 반영돼 있다. 한국과 미국 독일 일본 브라질 멕시코에서 온 참가자 12명의 대결을 그려낸 이 프로그램은 앞의 6개국 방송인들이 각기 자신의 나라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따로따로 진행을 한다. 한국에선 박경림 서경석이 진행자인데, 넷플릭스는 각 나라 참가자를 중심으로 한 6개 편집본을 따로 만들어 나라별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국적을 따지면 미국이지만 한국 등 다른 5개국 프로그램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글로벌 하다. 올해만도 자체 콘텐츠 확보에 60억 달러를 쓰겠다는 기업다운 면모다.

전통적인 TV시장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콘텐츠 소비 행태를 만들어가는 넷플릭스의 모습은 두렵고도 두렵다. 방송법에 따라 해외 자본의 국내 방송사 소유는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이제 이런 보호막은 국내 방송산업에 별 위안이 되지 못한다. 방송지형을 뒤바꿀 대지진이 일어날 조짐인데, 태풍이나 수해 대비만 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할까. 넷플릭스 국내 가입자는 아직 10만 명 이내로 추산되나 과연 5년 뒤에도 이 정도 수치에 머물까.

방송업계의 현실을 돌아보면 위기 불감증이 뚜렷하다. 여전히 지상파TV와 케이블채널, IPTV 등 구별 짓기에 여념이 없고,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이끌 강력한 정책조차 보이지 않는다. 특히 지상파TV, 그 중에서도 공영방송의 운영 행태나 전략은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최근 대법원은 원래 직종과 무관한 부서로 부당 전보된 MBC PD와 기자 9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전보발령 무효확인 소송에서 PD와 기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보도 업무를 담당해온 중견 직원들에게 5년 가량 스케이트장 관리나 협찬 영업을 시킨 게 잘못됐다는 취지다. 국내 방송의 콘텐츠 강화 운운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국내 방송계에 묻고 싶어진다. 한국 방송, 정말 살아남을 생각은 하고 있나요?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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