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5∙9 장미대선 공식 선거운동의 시작과 함께 공개된 선거 벽보가 화제다. 유권자와 차기 지도자의 오작교 역할을 하는 선거 벽보는 시대정신의 산물이기도 하다. 역대 대선 벽보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의 변화를 훑어보자.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못살겠다 갈아보자!”
1956년 5월 15일 종전 후 처음으로 제3대 대선이 치러졌다. 전쟁 후 피폐한 삶에 찌든 국민들의 마음에 불씨를 지핀 건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신익희 대통령∙장면 부통령 민주당 후보의 구호. 이 슬로건은 큰 인기를 끌지만 신익희 후보가 유세 중 서거해버리고 만다. 결국 ‘초대 대통령은 연임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사사오입 개헌을 기반으로 이승만 후보가 삼선에 성공하고 장면은 부통령으로 선출된다.
1971년 제 7대 대통령 선거 ‘콧수염 사나이’의 등장
1971년 4월 27일에 치러진 제 7대 대선 당시 눈에 띄는 후보가 있었다. ‘통일은 북진 통일’이라는 강경한 대북관을 가진 정의당 진복기 후보다. 트레이드 마크인 ‘카이저 수염’(양쪽 끝이 위로 굽어 올라간 콧수염)을 한 그의 득표율은 1.03%에 그쳤지만 그의 강력한 인상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7대 대선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 대권에 도전한 선거이기도 하다. 바람같이 등장한 그는 비록 낙선했지만 45.25%라는 무서운 득표율로 당선자 박정희(52.19%)를 추격했다. 이후 치러진 제 8대부터 12대 대선은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의 군부 독재 치하에 간선제로 실시됐다.
1987년 제 13대 선거 첫 총천연색 ‘칼라’ 선거 벽보 선보여
6·29 민주화 선언과 제9차 헌법 개정으로 13대 선거부터 대통령 직선제가 다시 실시됐다. 새 시대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는지 13대 대선부터 선거 벽보에 컬러가 도입되면서 색상이 후보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이 대선은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한국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굵직한 인물이 대거 출마한 선거이기도 하다. 1987년 12월 16일 승리의 트로피는 '위대한 보통사람’을 기치로 내건 민주정의당 노태우(득표율 36.6%)에게 돌아갔다. 그의 벽보 역시 화제였는데 과감한 색상 대비와 역동적인 포즈로 타 후보의 포스터와 차별화 시켰다.
1992년 제 14대 선거 ‘이색 후보’들의 등장
1992년 12월 18일 있었던 14대 대선(김영삼 당선)엔 독특한 이력의 후보들이 등장했다. 우선 현대그룹의 창업주이자 통일국민당 후보 정주영. 역동적이었던 그의 선거 벽보처럼 공약도 파격적이었다. 당시 그는 “아파트를 반값에 공급하겠다”는 폭탄 공약으로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한편 과감한 분홍색으로 눈길을 끄는 포스터의 주인공은 무소속 후보 김옥선씨다. 그는 ‘남장 여자’ 정치인으로, 포스터에서 전형적인 남성 정치인의 복장을 한 그의 얼굴 위 아래로 선명한 분홍색을 넣어 강렬한 인상을 줬다. 그는 비록 득표율 0.36%로 낙선했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이면 내걸지도 않겠다’는 무(無)공약으로 기성 정치에 일침을 가했다.
1997년 제 15대 선거 IMF 이후 국민 다독이는 벽보들 ‘눈길’
외환 위기의 그늘이 한반도를 드리웠던 1997년 12월 18일 15대 대선이 치러졌다. 이 대선은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득표율 40.3%)가 4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선거이기도 하다.
벽보 중 눈에 띄는 건 건설국민승리21의 권영길 후보(득표율 1.19%)의 포스터다. 인물 사진은 최대한 작게 하는 대신 태극기와 슬로건을 강조하는 파격을 가했다. 두 포스터 모두 국민들을 위로하고 경제 살리기를 강조하는 등 외환위기의 영향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2002년 제16대 선거 ‘돈세상을 뒤엎고 대동단결!?’
2002년 12월 19일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48.9%의 득표율로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당시 사회당의 김영규 후보(득표율 0.08%)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린 벽보가 행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불자였던 호국당 김길수 후보(득표율 0.2%)는 ‘불심으로 대동단결’이란 구호를 유행시켰다.
2007년 제17대 선거 ‘12명중 눈에 띄려면 철모쯤은’
2007년 12월 19일 17대 대선이 치러지고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득표율 48.67%)가 선출된다. 총 12명의 본선 후보가 대권에 도전해 ‘후보 난립’이라는 말 까지 돌았다.
12개의 벽보 중에서 눈에 띄는 건 새시대참사람연합의 전관 후보. 당시 후보 중 유일한 군 출신이었던 전 후보의 득표율은 0.03%에 그쳤지만 선거 포스터에 낡은 철모를 등장시킴으로써 남다른 안보정신을 자랑했다.
2012년 제18대 선거 ‘살아온 궤적이 다른 여인들의 투쟁’
지난 3월 10일 파면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출됐던 18대 대선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득표율 51.55%)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득표율 48.02%)의 박빙의 승부로 화제였다.
하지만 두 공룡 후보의 접전 아래 숨겨진 주인공이 있었다. 바로 ‘노동자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출마한 기호 5번 김소연(득표율 0.05%), 기호 7번 김순자 무소속 후보(득표율 0.15%)다. 노동자 출신인 두 후보의 철학은 포스터에도 묻어난다. 우선 여타 선거 벽보에 비해서 두 후보의 포스터는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 김소연 후보는 심지어 머리에 투쟁 띠를 두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중도 사퇴 없이 대선 레이스를 완주한 두 사람은 작지만 강한 힘을 세상에 알렸다.
2017년 제19대 선거 민심을 잡을 사람은 누구?
지난 17일 19대 대선의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하면서 각 당 대선후보들의 선거 벽보들이 공개됐다. 선거일까진 앞으로 20여일. 남은 기간동안 누가 민심을 잡을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진은혜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