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제^언론 투자 허용 등
‘뜨거운 감자’ 다시 꺼내 들수도
TPP 규제철폐 조항 추가 가능성
전면적 재협상보단 개선에 방점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18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미국 측이 향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의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펜스 부통령이 ‘재협상(renegotiation)’이란 말 대신 이보다 수위가 낮은 ‘개선(reform)’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기존에 제기됐던 한미 FTA에 대한 전면적 재협상 우려는 다소 완화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미국 측의 향후 개정 요구 범위에 따라 한미 FTA 내용의 변화가 불가피해져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업계와 정부에 따르면 미국 측이 향후 FTA 개정 안건으로 올릴 의제들은 서비스업과 제조업 등 광범위한 분야를 망라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혜선 무역협회 통상연구실 연구위원은 “펜스 부통령이 한미 FTA를 개선하겠다는 것은 협정문을 일부 고치고나 추가하는 개정(amendment)과 기존 협정문에 대한 적절한 이행(implementation)을 의미한다”며 “미국 기업들이 불만을 제기해왔던 우리나라의 불투명한 규제 등에 대한 개선 요구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도 “한미FTA에 대한 전면적인 재협상을 얘기한 것이 아니다”라며 “양국 간 이행 이슈나 미국이 관심 있는 통상현안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측은 아직 한미 FTA 개정과 관련해 공식적인 요구사항을 밝힌 적은 없다. 다만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발간한 무역장벽 연례보고서를 통해 한미 FTA타결에도 서비스와 투자분야 등에 상존한 우리나라의 무역장벽들이 산적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 중 미국 측이 가장 우선순위로 거론하는 게 법률 시장 개방 분야다. 실제 지난 1월 당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국회를 찾아가 법률시장 3단계 개방 법안(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의 전면수정을 요구하는 항의서한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한미 FTA에 따라 이달부터 법률 시장은 완전 개방됐지만 지난해 2월 개정된 외국법자문사법으로 합작 법인에 참여하는 외국 로펌의 지분율과 의결권은 49%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 분야도 핵심 논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김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은 최근 “미국 자동차업체들은 한국의 강도 높은 이산화탄소(CO2) 배출량 규제로 불이익을 보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환경규제 완화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는 국가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을 미국 측이 한미 FTA 개정 의제로 올릴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크린 쿼터제와 신문ㆍ방송 등에 대한 외국 지분 투자 허용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USTR은 보고서에서 “한국이 국내 영화에 최소 73일의 상영을 보장하고, 한미 FTA에 따라 외국인의 위성방송 투자제한이 철폐됐는데도 지상파 방송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여전히 불가하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스크린 쿼터제와 신문ㆍ지상파에 대한 외국인 지분 소유 등은 한미 FTA 협상 당시에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만큼 논쟁을 일으켰던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측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 과정에서 마련한 규제 철폐 규정들을 한미 FTA에 새롭게 추가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TPP 가입을 철회했지만, TPP를 추진할 당시 ‘21세기 통상 규범’이라는 이름까지 붙이면서 대대적인 규제 철폐 조항을 만들었다. 고준성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TPP 가입을 철회한 대신 그 안의 규제 철폐 조항들만 한미 FTA에 적용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며 “공기업의 해외투자에 대한 정부 지원 제한 등의 진보적 규범들이 많아 우리 정부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