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주택금융 세미나’
총 가계빚서 주담대 비율 40%대
“위험 직면한 상태 아니다” 지적
정부 규제 강화로 대형 건설사도
집단대출 금융기관 못 구해
“우수사업장 대출 제약 최소화하고
지나친 금리 인상 않게 점검해야”
현대건설은 지난해 10월 경기 광주시에 분양한 ‘힐스테이트 태전 2차’ 아파트 계약자들에게 “중도금 집단대출을 하나은행과 수협에서 받기로 했으니 21일부터 신청해 달라”고 최근 통보했다. 대형 건설사임에도 1차 중도금 납부 기한(2월 15일)을 두 달 이상 넘긴 뒤에야 겨우 중도금 대출 금융기관을 구한 것이다. 집단대출은 건설사가 개별 입주자를 대신해 금융기관에서 분양가의 60% 수준인 중도금을 단체로 대출받는 제도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집단대출을 해주겠다는 은행이 없어 1차 중도금 납부 기한을 미뤄왔다”며 “이제라도 해결이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2016년 10월 18일~2017년 1월 31일까지 분양한 52개 사업장 중 대출협약을 마무리한 곳은 15개 사업장(28.8%ㆍ한국주택협회 추산)에 불과하다.
정부가 가계부채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형 건설사조차 집단대출 금융기관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1금융권은 물론 2금융권마저 대출을 옥죄면서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을 받는 게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주담대ㆍ집단대출 중심의 정부 정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 채 부작용만 낳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오히려 가계부채의 질(質)만 악화시켜 주택시장 침체를 가속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택산업연구원 한국주택협회 대한주택건설협회는 1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주택금융규제 긴급진단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첫 발표자로 나선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가계부채 관련 규제가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란 발제문을 통해 “주담대를 최근 가계부채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보기 힘들고, 위험에 직면한 상태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7~2016년 전체 가계대출에서 주담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41~44%였다. 2014년 42.4%, 2015년 41.7%, 2016년 41.8% 등 가계부채 우려가 커진 최근에는 오히려 주춤하는 모양새다. 주담대 연체율(0.21%ㆍ지난해 11월 기준)도 기업대출(1.01%)이나 가계신용대출(0.54%) 보다 훨씬 낮다. 갚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이야기다.
고 교수는 주담대 중 전월세ㆍ매매 등 주택 관련 대출이 60%이고, 나머지 40%는 사업ㆍ생계자금 등으로 쓰이는 점을 지적하며 “무리한 주담대 규제가 오히려 가구의 재무건전성 악화와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소득층보다는 저소득층이나 자영업자 한계 가구가 대출 규제로 인한 주택가격 하락과 금리인상 등에 오히려 더 취약하다”며 “가계부채 문제는 경기부양이나 가구의 소득증대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도 “가계부채 건전성 관리 효과가 적은 주담대ㆍ집단대출에 집중하는 현 규제방식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집단대출 규제강화가 가계부채 건전성 관리에 기여하는가’란 주제 발표를 통해 “중도금 대출 규제강화로 금리가 높아지면서 주택사업자와 소비자 모두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가 가계부채 핵심 요인으로 지목한 집단대출(108조원ㆍ2016년 말 기준)이 전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불과하다. 전년보다 대출 규모가 2조원 줄었고, 연체율도 0.29%로 낮다. 집단대출을 가계부채 폭탄의 뇌관으로 보긴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정부 규제로 1금융권이 집단대출 문턱을 높인데 이어 저축은행ㆍ신협ㆍ새마을금고 등 2금융권도 중도금 대출을 중단하면서 실수요자들은 결국 더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만 커진 셈이다. 김 실장은 “내수경제의 버팀목인 주택산업의 연착륙을 위해선 우수 사업장에 대한 대출 제약을 최소화하고, 집단대출 금리가 지나치게 인상되지 않도록 점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제2금융권의 집단대출 금리(16일 기준)는 5.30~5.50%로, 지난 2월(3.88~4.50%)보다 1%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1금융권 집단대출(3.58~4.23%) 금리도 같은 기간 0.1%포인트 가량 올랐다.
추병직 주택산업연구원 이사장은 “제2금융권까지 대출규제가 심해지며 실수요자의 자금조달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도 “정부가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를 늦추는 데만 초점을 맞추면서 오히려 가계부채의 질만 악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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