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의 한 축구동호회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장모(23)씨는 지난달 말부터 국내 최대 규모 동호인 온라인커뮤니티에 “친선경기 할 팀을 찾는다”는 글을 올린 A(27)씨와 ‘거래’를 시작했다. 봄을 맞아 축구 동호회 활동들이 한꺼번에 왕성해지면서, 경기를 할 구장을 찾는 게 쉽지 않아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구장 대여료 분담금 명목으로 현금 10만원만 보내면 된다고 했다. 통상 구장을 한 번 빌리려면 4시간 기준으로 30만~40만원을 줘야 하는 걸 생각하면, 꽤 괜찮은 조건이었다. 장씨는 친선경기 시간과 인원, 자체 규정 등에 대한 논의를 마치고 A씨 계좌로 10만원을 보냈다.
돈을 보내자 A씨가 사라졌다. 그 동안 얘기를 나눴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말을 걸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불길한 예감에 커뮤니티에 들어가보니 A씨가 남긴 글은 모두 사라진 채였다. 대신 유사한 방식으로 “금전사기를 당했다”는 피해 글이 10건도 넘게 올라와 있었다. A씨를 곧장 경찰에 신고한 장씨는 17일 “모두 나처럼 구장 공유 및 양도를 제안하는 글을 믿고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천 계양구에 사는 이모(29)씨도 또 다른 축구 동호회에서 사기를 당했다. 싼 값에 구장을 빌릴 수 있고, 친선경기도 가능하다는 식의 똑같은 수법이었다. 이씨는 “10만원 정도로 큰 돈은 아니지만 기분이 굉장히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동호인들끼리 자신이 가입한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피해 사례를 종합해본 결과, 올해 들어서만 8개의 이름, 9개의 전화번호, 5개의 계좌번호가 ‘축구장 대여료 사기’에 동원됐다는 것도 알아냈다.
정씨와 이씨의 신고에 따라 수사에 착수한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는 “계좌 추적 등을 벌인 결과 두 사람 모두 동일한 인물인 A씨에게 사기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경찰조사결과 A씨는 지난해 12월에도 같은 수법으로 30회에 걸쳐 약 400만원의 피해를 끼친 혐의로 불구속입건 된 바 있다. 경찰 관계자는 “A씨 외에도 여러 건의 동일 수법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거래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며 “사이버상의 금전사기엔 대포폰과 대포통장이 활용돼 추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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