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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1.9㎢ 차 없는 거리로… 보행왕국 또 큰걸음

입력
2017.04.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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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번화가 칼 요한스 거리

왕궁까지 이어진 보행전용로에

국립극장 등 역사적 건축물 자랑

피오르 낀 아케르 브뤼게에선

관광객ㆍ시민 테라스서 여유

6월부터 차량통제 단계적 강화

세계 최대 차 없는 도심 추진

햇볕이 좋은 날이면 오슬로 시청 앞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아케르 브뤼게 지역 테라스 카페는 늘 만석이 된다. 전수현 객원기자
햇볕이 좋은 날이면 오슬로 시청 앞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아케르 브뤼게 지역 테라스 카페는 늘 만석이 된다. 전수현 객원기자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우리에게는 매년 겨울 노벨평화상을 시상하는 도시로 익숙하지만 유럽에서는 그 어느 도시보다 걷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

여행자들이 오슬로 시내에서 가장 먼저 찾는 최대 번화가인 칼 요한스 거리는 중앙역에서 노르웨이 왕궁까지 거대한 가로수와 녹지대로 이어지는 약 1.5㎞의 보행자전용도로다. 칼 요한스 거리에는 오슬로대 법과대학을 비롯해 국립극장, 국립미술관과 17세기 오슬로 대성당 등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모여 있고 주변 도로 일대의 차량 운행이 통제된다.

다양한 상점이 가득한 쇼핑거리를 지나면 국립극장이 나오고 바로 앞 언덕 위 옅은 노란빛의 건물, 노르웨이왕궁이 보인다. 길 오른편에는 1851년 완공돼 긴 시간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오슬로대 법과대학 건물들이, 왼편에는 국립극장역 분수대가 서있다. 분수대를 지나 걷다 보면 에드바르트 뭉크작 ‘절규’의 배경이 된 오슬로피오르를 볼 수 있는 아케르 브뤼게(Aker Brygge)가 나온다.

아케르 브뤼게는 항만 창고 지역을 재개발해 만든 현대식 쇼핑 지역으로 길 한편에 쇼핑몰과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특히 햇볕 좋은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테라스에 앉아 커피, 음식 등을 즐기며 여유를 만끽한다. 맞은편 물가에는 크고 작은 요트가 여러 척 정박돼 있다. 그 옆 드문드문 위치한 노상에서는 아이스크림이나 와플 등 군것질 거리를 팔고 누구나 앉아 쉴 수 있는 벤치와 선베드도 근처에 여럿이다. 쇼핑과 문화, 그리고 맛이 공존하는 아케르 브뤼게는 지역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 받는 장소다.

지난 11일 아케르 브뤼게에 위치한 아스트룹 피언리 현대미술관에서 일본의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 특별전을 감상하던 미국인 제시 캔들(42)을 만났다. 그는 “여행중 경유지로 들른 오슬로에서 8시간 여유가 생겨 오전부터 내내 걸어서 시내를 구경하는 중”이라며 “전시를 다 보고 오페라하우스까지 걸어가 구경한 뒤 바로 옆 중앙역에서 공항철도를 이용해 돌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는 경사면을 따라 지붕에 올라갈 수 있게 설계한 독특한 구조로 유명하다. 전수현 객원기자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는 경사면을 따라 지붕에 올라갈 수 있게 설계한 독특한 구조로 유명하다. 전수현 객원기자

2008년 개장한 오페라하우스는 중앙역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흰 외벽과 통 창유리로 현대적 느낌을 가득 담은 이 건물은 ‘걷기’를 위해 설계했다. 긴 경사면을 따라 건물 외벽을 타고 걸으면 누구나 지붕 위로 올라갈 수 있다. 건물 꼭대기에 다다르면 시내 전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이날 오페라하우스 지붕 위에서 만난 독일인 프레드릭 파데(23)는 3명의 친구와 함께 도시 전경 감상에 푹 빠져 있었다. 유럽 부활절 연휴를 맞아 친구들이 오슬로대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있는 파데를 방문한 것이다. 파데는 “베를린처럼 큰 도시와 달리 오슬로는 걸어서 이동하기 좋은 작은 도시”라며 “오늘도 오페라하우스 구경 후 중앙역에서 국립극장까지 친구들과 걸어 이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슬로의 보행자 우선주의는 앞으로 더 강화될 전망이다. 최근 뉴욕을 비롯한 전 세계 대도시들이 도심 차량통제 정책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오슬로는 가장 적극적으로 차 없는 도시를 추구하는 곳이다. 오슬로는 여름부터 새로운 도시계획 ‘차 없는 도시 생활’을 시행한다. ‘보다 나은 도시환경 조성과 다채로운 도시생활 장려’가 목적인 이 계획은 총 3단계로 이뤄진다. 오슬로 의회는 6월부터 시청 주변 등 총 여섯 군데의 지상 주차를 금지하는 1단계 계획을 시행한다. 이를 시작으로 2018년 2단계, 2019년 3단계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오슬로는 1.9㎢ 면적의 세계에서 가장 넓은 차 없는 도심을 가지게 된다. 도시계획 총괄 감독 한스 에드바르드슨은 지역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오슬로의 차 없는 도시 프로젝트는 세계 여러 주요 도시들로부터 영감을 받았지만 지금껏 오슬로만큼 포부가 큰 도시는 없었다”고 밝혔다.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꼭대기에 오른 관광객들이 도시 전경을 만끽하고 있다. 전수현 객원기자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꼭대기에 오른 관광객들이 도시 전경을 만끽하고 있다. 전수현 객원기자

오슬로의 새 도시정책이 처음부터 여론의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이 계획은 지난 2015년 지방선거에서 녹색당의 제안으로 처음 등장해 현재 의회 과반을 차지하는 노동당, 녹색당, 사회당 연합의 주도로 구체화됐다. 첫 정책 발표 당시 주변 상권 침체를 걱정하는 지역 상인 및 오슬로 상공회의 반대 목소리가 특히 컸다. 시내 차량 진입 금지 정책이 노약자나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을 저해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시내 차량 진입 전면 금지 법제화를 계획하던 오슬로 의회는 여론을 반영해 계획을 즉시 수정했다. 바뀐 계획은 소방차와 경찰차, 구급차 등 긴급차량의 시내 진입을 허용하고 물류운송과 대중교통 등 중요한 사회기능을 위한 차량 진입 또한 허용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장애인 주차를 이전보다 쉽게 하는 방안 등도 들어 있다.

노르웨이는 국토 면적이 남한의 4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520만 명으로 우리나라 인구 10분의 1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수도 오슬로에 거주하는 인구는 62만명이 채 안 된다. 이번 의회가 추진하는 새 도시계획에는 흔히 인구가 적고 춥고 긴 겨울을 자랑하는 나라 등으로 알려진 오슬로를 국제적인 ‘겨울왕국’으로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에드바르드슨 도시계획 총괄 감독은 “노르웨이의 추운 겨울을 오슬로만의 매력적인 특징으로 만들기 위해 창의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도시계획 시행으로 지역, 상업, 문화가 협력하는 활기 넘치는 오슬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슬로=전수현 객원기자ㆍ오슬로대 미디어학 석사

오슬로 아케르 브뤼게 지역에는 도보로 산책하는 이들이 쉴 수 있는 벤치가 곳곳에 조성돼 있다. 전수현 객원기자
오슬로 아케르 브뤼게 지역에는 도보로 산책하는 이들이 쉴 수 있는 벤치가 곳곳에 조성돼 있다. 전수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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