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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술탄’ 에르도안…터키 민주주의 무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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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술탄’ 에르도안…터키 민주주의 무너지나

입력
2017.04.1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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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사법·행정권 모두 손에 쥐고

최대 2034년까지 임기 연장 가능

이슬람식 국정 운영 가속화할 듯

찬성 51% 반대 48% 박빙 결과

곳곳서 부정 투표 의혹 터져나와

“파시즘 반대” 반정부 시위 확산

16일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에서 대통령제 개헌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이스탄불=EPA 연합뉴스
16일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에서 대통령제 개헌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이스탄불=EPA 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마침내 ‘21세기 술탄’에 등극했다. 16일(현지시간) 통치구조를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꾸는 개헌안 국민투표가 가결되면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 받은 에르도안 대통령은 절대 권력자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러나 벌써부터 부정 투표 의혹이 제기되고 이슬람주의를 전면에 내건 에르도안의 반동적 행보에 민주주의 훼손을 우려하는 반발도 거세져 터키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터키 관영 아나톨루 통신에 따르면 이날 치러진 국민투표 개표 결과, 찬성 51.41%, 반대 48.59%로 각각 나타나 2.82%포인트 차로 개헌안이 통과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개표 결과 발표 직후 “터키 역사상 최초로 시민들의 힘으로 통치 시스템을 바꿨다”며 투표 승리를 선언했다.

이번 개헌안은 18개 헌법 조항을 수정했다. 총리직을 없애는 대신 부통령직을 신설해 대통령에게 권한을 집중시키는 것이 골자다. 단순히 통치구조만 변경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장관 등 고위공직자 임면권과 의회해산권을 갖고, 법률에 버금가는 행정명령을 발동할 수 있다. 판ㆍ검사 인사에도 개입하는 등 사법부 통제력도 한층 커졌다. 4년마다 실시되는 총선 역시 대통령선거(5년)와 동시에 치르게 했다. 행정, 입법, 사법을 아우르는, ‘제왕적 대통령’으로서 국정 운영이 가능해진 셈이다.

새 헌법은 2019년부터 시행된다. 1회 중임이 허용되는 점을 감안하면 2029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데, 의회 동의를 얻을 경우 조기 대선을 통해 한 번 더 출마가 허용돼 이론적으로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2034년까지 임기 연장이 가능하다. AP통신은 “2003년 총리를 시작으로 이미 14년간 터키를 통치한 에르도안이 무려 31년 간 권좌를 지킬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서방 언론들은 앞다퉈 “터키 세속주의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보도했다. 1923년 공화국 수립 이후 ‘정교 분리’를 원칙으로 삼은 세속주의 전통이 붕괴됐다는 의미다. 특히 지난해 7월 에르도안의 과도한 이슬람화에 반발해 세속주의 보루,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 실패는 그의 야심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국제문제 전문가 프리다 기티스는 CNN에 “1,100개 방이 딸린 에르도안의 6억달러(약 6,823억원)짜리 호화 대통령궁은 현대판 술탄의 상징’이라며 “터키 민주주의는 사망했다”고 비판했다.

터키의 내부 분열상은 이미 가시화했다. 투표 결과 발표와 동시에 야권에서는 부정 개표 의혹이 흘러나오고 있다.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뷜렌트 테즈잔 부대표는 개표 당시 정당 참관이 허용되지 않은 점, 관인이 찍히지 않은 투표지를 유효표로 인정했다는 점 등을 들어 17일 선거관리위원회에 국민투표 무효화를 요구했다. 선관위는 실제 개표 도중 관인이 없는 투표지를 받았다는 유권자 민원을 받고선 이를 유효 처리했다.

야권이 제기한 개표 조작 의혹은 하루만에 국제기구의 인정을 받으며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터키 국민투표 과정 전체를 모니터링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ㆍ유럽회의 의회(PACE) 공동 감시단의 세자르 플로린 프레다 단장은 이날 “개표 과정 후반의 변화는 중요한 (공정 투표의) 안전장치를 없앴다”며 의혹에 힘을 실었다. 그는 “터키 국민투표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행돼 찬반 양측이 동등한 기회를 갖지 않았다”며 선거 과정 전반에 대해 혹평했다.

다른 유럽국가들과의 관계도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개헌안 가결 일성으로 “사형제를 부활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사형제 폐지는 유럽연합(EU) 핵심 가입 조건이어서 EU 가입을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미 싱크탱크 저먼마샬펀드 앙카라 지부의 오즈굴 지부장은 “에르도안은 새 헌법시스템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서방 국가들을 공격하며 외교적 위기를 조장했다”고 말했다. 에르도안은 개헌 유세 과정에서 국외 찬성집회를 불허한 독일과 네덜란드를 “나치”라고 맹비난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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