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위기설 잦아들고 협상론 고개
중국과 미국 간 모종의 거래 정황도
안보위기 헤쳐나갈 지도자 선택해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강행 움직임 속에 미국의 대북 선제 공격설이 나돌면서 4월 위기설로 흉흉했다. 하지만 15일 북한의 태양절(김일성 탄생일)을 고비로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잠잠해지고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의 기류가 조심스럽게 일고 있다. 방한 중인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17일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겨냥해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 면서도 “평화로운 수단, 협상을 통해서 풀고 싶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 후 2개월의 검토 끝에 대북전략을 ‘최대 압박과 개입’(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으로 확정했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 크다. 물론 당장의 강조점은 ‘최대 압박’에 놓여 있는 게 분명하다. 칼빈슨 핵항모 전단 등 막강한 전략자산을 한반도 주변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은 그 일환일 것이다. 시리아 전격 공습과 ‘모든 폭탄의 어머니’로 불리는 초대형 GBU-43 아프가니스탄 투하 등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으며 어느 때보다 강력해지고 있다”고 북한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개입’이라는 대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때 워싱턴 조야에 파다했던 북한 선제공격 가능성은 거의 잦아들었다. 현실적으로 북한 핵 시설 등의 선제공격이 쉽지 않고, 북한의 보복 공격이나 전면전 비화 같은 심각한 사태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음을 트럼프 행정부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트럼프가 아니다. “중국이 안 하면 우리가 하겠다”며 중국에 공을 넘기고 지켜보는 상황이다. 미중 정상회담 후 중국이 취한 일련의 대북 압박은 트럼프와 시진핑 간 모종의 거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국적항공사인 차이나 에어의 베이징_평양 노선 운항을 17일부터 중단했고, 북한관광 상품 판매도 사실상 중단시켰다. 앞서 북한산 석탄을 싣고 중국 항구에 들어온 화물선을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기도 했다. 모두 미중 정상회담 이후 취해지고 있는 조치들이다. 물론 북한에 대한 유류 공급을 중단하라는 요구에는 쉽게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가 최악이었을 때도 대북 송유관 밸브를 잠그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북한 포기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유류공급을 중단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중국이 북한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김정은 정권을 설득할 이유도 된다. 이미 물밑에서 핵과 장거리미사일 개발 동결을 전제로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미국의 ‘최대 압박과 개입’ 정책이 잘 접합되면 북한과 미국, 또는 북ㆍ미ㆍ중 간 대화 국면이 갑자기 열릴 수도 있다. 물론 김정은 정권이 이번 태양절 행사에서 ICBM 원통형 발사관 등 각종 탄도미사일을 과시한 것에 그치고 6차핵실험과 ICBM시험발사를 하지 않는 게 관건이다.
문제는 우리다. 국정농단과 탄핵정국에 이어 조기 대선의 한 가운데에 있다. 4월 위기설 등으로 안보가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긴 했지만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한반도 정세에 주도적으로 대처할 주체가 아직 없다. 9ㆍ19 공동성명을 이끌어 낼 당시에는 우리 정부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전혀 다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거래가 이뤄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북한은 북한대로 우리를 배제하고 미국과 직거래를 노릴 게 틀림 없다.
이 중대한 국면의 엄중함에 대해 유력 대선후보들이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5ㆍ9 대선에서 과연 어떤 후보가 안보 위기를 헤쳐나갈 역량을 갖고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검증해야 한다. 막연히 4월 위기설 등에 휘둘리지 않고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갈 지도자를 구별하는 눈이 필요하다.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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