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옥살이 18명 “무죄” 주장
인권유린행위 사법 판단 요구
제주 4ㆍ3사건 당시 법률적 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형식적인 재판을 받고 형무소로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한 ‘4ㆍ3수형피해자’들이 70여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다.
제주4ㆍ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4ㆍ3사건 당시 수형생활을 했던 18명이 ‘4ㆍ3수형희생자 불법 군사재판’ 에 대한 재심청구서를 19일 제주지법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17일 밝혔다.
이번 재심 청구인은 4ㆍ3사건 당시 전주형무소(9명)와 인천형무소(6명), 대구형무소(2명), 마포형무소(1명)에서 수감 생활을 했던 피해자들로, 90살을 앞두고 있거나 90살이 넘은 고령자다.
4ㆍ3도민연대는 이날 “이번 재심청구는 4ㆍ3사건 당시 ‘불법군사재판’에 의해 저질러진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 70여년 만에 다시 사법적 판단을 구하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4ㆍ3사건 당시 군사재판을 받은 수형인은 2,530명, 일반 재판 수형인은 1,306명에 이른다. 이들은 군사재판이나 일반재판의 형식을 거쳐 수감됐지만, 상당수는 죄명이나 형량도 모른 채 장기간에 걸쳐 수감 생활을 한 것은 물론 일부 생존자들은 재판을 받은 기억이 없다고 증언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말 4ㆍ3도민연대가 발표한 ‘제주 4ㆍ3 인천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수형인들 상당수는 폭도로 내몰려 경찰에 끌려간 뒤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이번 조사는 4ㆍ3도민연대가 4ㆍ3사건 당시 인천형무소 수형인 408명 중 361명의 생존자와 희생자 유족 등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현재 생존자는 10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수형인들은 당시 모두 14세에서 19세 미만의 10대 청년들로, 1948년 200명, 1949년 208명의 청년들이 적법 절차를 어긴 군사재판을 받고 고향을 떠나 인천형무소까지 끌려갔다. 408명 중 59명은 영문도 모른 채 20년 이상의 중형에 처해졌다. 이 중 15명은 사형, 22명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96.9%는 당시 군법재판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또 4ㆍ3희생자 결정에 따른 명예회복 질문에는 응답자의 71%가 ‘아직도 명예회복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92%가 ‘법적으로 아무런 조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혐의도 모른 채 5년간 인천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했던 현창용(86)씨는 “1948년 당시 16살 때 제주시 노형동 자택에서 잠을 자다 한밤중에 어머니와 함께 경찰에 끌려가 이유도 모르고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했다”며 “그곳에서 밥해주는 아주머니가 ‘살려면 경찰이 말하는 대로 시인하라’고 해서 그냥 대답하고 살아남았다”고 증언했다.
국민의당 제주도당도 지난달 말 ‘제주 4ㆍ3수형희생자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수형희생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국민의당 제주도당은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4ㆍ3수형인명부에 등재된 희생자 수는 모두 2,530명으로, 현재 이 중 30여 명만 생존해 있다”며 “수형희생자에 대한 객관적인 진상조사가 매우 시급하다”고 밝혔다.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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